설교말씀 모세의 선택 출애굽기 7장 1절에서 7절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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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설교말씀 모세의 선택 출애굽기 7장 1절에서 7절까지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볼지어다 내가 너를 바로에게 신 같이 되게 하였은즉 네 형 아론은 네 대언자가 되리니 내가 네게 명령한 바를 너는 네 형 아론에게 말하고 그는 바로에게 말하여 그에게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내보내게 할지니라 내가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고 내 표징과 내 이적을 애굽 땅에서 많이 행할 것이나 바로가 너희의 말을 듣지 아니할 터인즉 내가 내 손을 애굽에 뻗쳐 여러 큰 심판을 내리고 내 군대,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낼지라
내가 내 손을 애굽 위에 펴서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낼 때에야 애굽 사람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시매 모세와 아론이 여호와께서 자기들에게 명령하신 대로 행하였더라 그들이 바로에게 말할 때에 모세는 팔십 세였고 아론은 팔십삼 세였더라
할렐루야 한 주도 주님의 평안 가운데 지켜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오늘 본문 말씀의 장소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시내 광에 도착하기 전인 마지막으로 진을 치게 된 장소 르비딤입니다.
르비딤의 원뜻은 ‘쉬는 장소, 평원, 시원케하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신광야를 떠나 계속 걷다가 르비딤에 도착합니다. 쉬는 장소이기도하고 시원케 하다는 뜻을 가진 르비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너무도 안성맞춤인 장소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쉬는 장소인 르비딤에 열심히 장막을 쳤습니다. 그리고 그리고 시원케하는 물을 마시려 하는데 이게 무슨 일입니까? 성경은 간단 명료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백성이 마실 물이 없는지라’
이스라엘 백성의 현재 상황은 어떤 상황입니까? 3절 말씀을 보니 백성이 목이 말라 물을 찾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열심히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르비딤에 도착한 백성들은 이제 좀 쉴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뜨거운 태양 아래 장막을 다 치고 목이 타들어 갈 것 같고 또 시원케 할 물을 생각하니 마음 또한 시원해지는 느낌이 들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현실은 어떠합니까? 냉혹하기만 합니다. 시원한 물은커녕 마실 물조차 없는 것입니다. 얼마나 기가 막히고 황당한 사건입니까?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아이들 노인 할 것 없이 물을 찾는데 물이 없습니다. 어쩌면 물이 없다는 말에 더욱더 갈증이 날지도 모릅니다.
어느 순간 쉼의 장소는 원망의 장소요 불평의 장소가 되어버리기 일보 직전입니다. 쉴 수 있는 곳이라 생각했는데 시원한 물을 마시며 하나님께 감사할 준비가 다 되어있었는데 감사는커녕 원망과 불평에 싸여 더 이상 르비딤은 쉬는 장소가 아닌 하나님을 시험하는 장소로 전락해 버리고 만 것입니다. 아마 이스라엘 백성은 이렇게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하나님의 명령대로 떠나서 하나님의 명령대로 진을 쳤는데 그럼 누구의 잘못이란 말인가?
물이 없다는 사실을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반응은 즉각적이었습니다. 또한 그들의 방법은 세상과 전혀 다르지 않은 방법들이었습니다. 죽고 사는 문제에 막닥뜨리자 더 이상 눈에 보이는 것이 없었습니다. 오로지 물과 왜 잘 먹고 잘살던 우리들을 여기까지 인도한 것이냐는 원망뿐입니다.
첫째 이스라엘의 반응은 모세와 다투었습니다.
우리가 다투다라고 할 때는 대체적으로 언쟁을 하는 정도로 생각할 수 있는데 여기서의 다툼은 그렇게 간단한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원문에 다투다를 찾아보면 ‘리브’라고 하는데 언쟁뿐만 아니라 주먹질까지 포함한 말입니다. 뵈는게 없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더 이상 주님이 약속하신 땅을 함께 가는 동역자요 위로자가 아닌 폭도와 다를 것 없는 사람입니다. 군대에 가면 전우애가 깊은 이유는 다른 이유보다도 죽을 것 같은 힘들고 어려운 경험을 했기에 서로를 아끼고 보살피고 사랑하는 마음이 더욱 커진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과 모세와의 관계도 그러합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광분한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모세는 어찌하여 나와 다투는가?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를 시험하는가라고 한탄을 합니다. 갈증이 나기는 모세도 마찬가지입니다.
모세의 입장에서 본다면 지금까지 나도 너희와 함께 걸어왔는데 어찌하여 나를 원망하는가? 어찌하여 나를 공격하는가? 그동안 모든 것을 함께 보고 함께 하며 내가 너희들에게 숨긴 것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 왜 물이 없음을 인하여 나를 원망하는가라는 어처구니 없는 처사에 대하여 모세 역시 의분을 가라앉히기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모세는 또 뭐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를 시험하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원망은 단순히 모세를 향한 것이 아닌 하나님을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세는 간파한 것입니다. 모세는 말합니다. ‘어찌하여’ 이들의 행동을 조금도 이해 할 수 없다는 의미인 것 같습니다. 사전에 찾아보면 ‘어떠한 이유 때문에, 어떠한 방법으로’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너희들이 어떠한 이유로 하나님을 시험하는가라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어떠한 이유로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시험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의 태도는 어떠합니까?
조금도 물러서지 않는 기세입니다. 그리고 다시 더 논리적으로 자신들의 원망과 불평에 정당성을 부여하며 따지기 시작합니다. “그들이 모세에게 대하여 원망하여 이르되 당신이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서 우리와 우리 자녀와 우리 가축이 목말라 죽게 하느냐” 이유는 이것입니다. 내 가족 내 재산이 다 망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하나님께서 하신 일에 대하여 원망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베푸신 선하신 일과 목적에 대하여 원망합니다. 뭐라고 합니까? 우리를 애굽땅에서 인도해 내서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이유를 모르지 않는 백성들은 말하기를 우리가 애굽땅에서 잘 먹고 잘 사는데 왜 ‘어찌하여’ 조금도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어찌하여 우리를 목말라 죽게 하냐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실존입니다. 이스라엘은 항상 불평할 때마다 잊지 않는 말을 있는데 애굽만 못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결론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선을 악으로 갚는 것이 이스라엘이 그동안 인도하신 하나님께 대한 반응이요 응답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실 은혜를 목말라 죽게 한다고 덤벼듭니다.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은혜도 모르고 감사도 모르는 이러한 백성을 통해서 무엇을 기대할 수 있단 말입니까? 누구입니까? 이토록 은혜도 모르고 감사도 모르는 사람 바로 불평과 원망하는 우리 자신들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지 않고 감사하지 않는 우리가 바로 불평과 원망으로 일삼은 배은망덕한 이스라엘입니다. 이스라엘이 자신들이 당면한 상황에서의 반응은 다투는 것과 원망이었습니다. 그리고 극단적인 방법인 돌을 드는 것입니다. 돌을 들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던지기 위함입니다. 이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문제 앞에서의 해결 방법의 선택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모세의 선택은 무엇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