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경제현황 남북교류협력의 증진 방안

 1  북한 경제현황 남북교류협력의 증진 방안-1
 2  북한 경제현황 남북교류협력의 증진 방안-2
 3  북한 경제현황 남북교류협력의 증진 방안-3
 4  북한 경제현황 남북교류협력의 증진 방안-4
 5  북한 경제현황 남북교류협력의 증진 방안-5
 6  북한 경제현황 남북교류협력의 증진 방안-6
 7  북한 경제현황 남북교류협력의 증진 방안-7
 8  북한 경제현황 남북교류협력의 증진 방안-8
※ 미리보기 이미지는 최대 20페이지까지만 지원합니다.
  • 분야
  • 등록일
  • 페이지/형식
  • 구매가격
  • 적립금
자료 다운로드  네이버 로그인
소개글
북한 경제현황 남북교류협력의 증진 방안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북한경제는 1990년대 들어서면서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로 전환된 이래 1998년까지 9년간 연속 마이너스 경제성장률을 기록하였다. 1995~1997년을 ‘고난의 행군시대’, 1998년을 ‘사회주의 강행군의 해’라고 북한 스스로 명명한 것을 보아도 1990년대 후반 들어 북한의 경제난이 최악의 상태였음을 알 수 있다.
1998년 9월 김정일 체제의 공식 출범 이후 1999년부터 북한경제는 내부적으로 여러 가지 변화된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강성대국 건설’이라는 새로운 국가목표를 설정하고, 실천적 대중운동으로 ‘제2의 천리마대진군’을 채택하는 등 본격적인 경제회복 정책을 추진하기 시작하였다. 북한은 1999년을 ‘강성대국 건설에로 전진하는 전환의 해, 총진군의 해’(신년 공동사설)로 규정함으로써 경제회복에 다소 자신감을 내비치기 시작하였으며, 2000년을 ‘천리마 대고조의 불길 속에 자랑찬 승리의 해’(신년 공동사설)로 규정하는 등 경제운영에 대하여 보다 강한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우선, 실물부문에서 경제가 회복되는 기미가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또한 각종 대규모 토목건설사업이 추진되기 시작한 것도 1999년 북한경제의 특징으로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북한경제의 회복은 국제사회의 대북지원과 남북경협사업 활성화에 힘입은 바 크지만 농수축, 철도수송, 철강, 건설부문 등을 중심으로 상당폭의 성장세를 보임에 따라 대내경제 상황이 경기 저점을 통과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경제는 경제제도 및 정책 측면에서도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다. 헌법개정(1998년 9월)과 함께 행정기구를 대폭 축소하여 주석, 중앙인민위원회 및 산하 위원회, 정무원 및 산하 위원회, 지방행정경제위원회 등을 폐지하고, 과거의 부를 성으로 변경하여 내각(1총리, 2부총리, 1위원회, 26개성, 1원, 1은행, 2국, 지방인민위원회)으로 단순화하였다. 또한 지난 26년동안 북한의 공업지도관리방식이었던 연합기업소체계가 해체되어 기업집단의 경영을 담당하던 ‘연합기업소 당위원회’가 해체됨으로써 내각의 경제단위에 대한 직접적 영향력을 강화하려는 모습이 나타났다. 이와 함께 외국인투자관련 법규를 개정하였으며, 정책적으로 과학기술 개발에 국가적 역량을 우선 투입하고 수출을 활성화하려는 노력도 나타나고 있다.
이처럼 김정일 체제 출범 이후부터 북한경제는 실물부문, 경제제도, 경제정책까지 다방면에서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다. 이에 따라 김정일 체제 출범 이후 북한에서 나타나고 있는 일련의 경제제도 개편 및 경제정책 변화를「김정일식 경제개혁」이라는 총체적 개념으로 파악함으로써 전반적인 북한경제 상황을 진단하고 향후 북한경제의 변화추이를 이해하여야 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북한의 정치경제체계에서 ‘선군정치’와 ‘선군사상’은 세가지의 중요한 정치경제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첫번째, ‘선군정치’와 ‘선군사상’은 군대를 정치적 기반으로 삼고 있는 김정일 총비서와 군대와 무관한 일반주민 사이를 연결하는 고리로 활용되는 측면이 있다. 즉, ‘선군정치’는 일반주민들에게 군대와 관련된 사상체계, 다시 말하면 ‘선군사상’을 고취시킴으로써 주민의 수령에 대한 절대적 충성심을 유도하기 위한 정치적 입지 강화의 수단으로 활용된다는 것이다. 두번째, 김일성종합대학 경제학부 김재서 부학부장은 ‘선군정치’란 “적대세력의 침략으로부터 나라를 보위하기 위한 정치일 뿐 아니라 나라의 경제건설을 위한 효과적인 방도까지도 집대성하고 있는 정치방식”이라고 정의하고 “군대가 국방뿐만 아니라 경제건설에 직접 투입되고 있는 것이 비밀이 아니다”라고 설명한 것에 근거 할 때, ‘선군정치’는 최고사령관(김정일)의 지시에 따라 일부 병력이 협동농장, 발전소건설, 토목공사 등에 투입되는 현상을 설명하는 북한 특유의 정치경제적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 세 번째, ‘선군정치’는 김정일 총비서의 지도력이 군대와 관련된 분야에만 한정되지 않고 경제분야에도 닿고 있다는, 즉 ‘경제지도자’의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는 측면이 있다. 예를 들면, ‘선군정치’를 표방하면서 ‘제2의 천리마대진군’에 주민 노동력을 동원하고, ‘현지지도’의 범위가 군대 뿐 아니라 경제부문으로까지 확대되는 현상은 김정일 총비서의 ‘경제지도자’ 이미지를 제고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해할 수 있다.
‘제2의 천리마대진군’은 김정일 총비서가 1998년 3월 14일 성진제강연합기업소를 방문하였을 때 ‘다시한번 천리마 대고조의 선봉에 설 것’을 호소한 데서 시작하여, 1999년 신년 공동사설에서 “강성대국 건설을 위해 수령님의 영도따라 제2의 천리마대진군을 다그쳐 나가야 한다”는 촉구와 함께 1999년 11월 ‘제2의 천리마대진군 선구자대회’를 거치면서 북한의 公式的인 대중운동으로 자리잡았다. 북한이 1999년부터 ‘제2의 천리마대진군’을 추진하고 있는 이유는 현재 북한의 정치 및 경제적 상황이 ‘천리마운동’을 추진하기 시작하였던 1958년과 유사하다는 인식이 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1) ‘천리마운동’과 ‘제2의 천리마대진군’의 공통점
정치적 측면에서 ‘천라마운동’과 ‘제2의 천리마대진군’을 비교해 보면, ‘천리마운동’이 추진된 1958년은 김일성이 최고인민회의에서 내각수상으로 재선(1957년 9월)된 다음해이며, ‘제2의 천리마대진군’이 추진된 1999년은 최고인민회의(1998년 9월)에서 김정일이 국방위원장에 취임한 다음해로서, 공통적으로 정치적 권력기반을 다지는 시기였다. 경제적 측면에서 보면, ‘천리마운동’은 6.25 이후 피폐한 경제를 복구하기 위하여 추진되었으며 ‘제2의 천리마대진군’은 이른바 ‘고난의 행군’(1995~1997년)을 거치면서 최악상태에 빠진 북한경제의 회복을 위해 추진되고 있다는 의미에서 공통점이 있다.
‘제2의 천리마대진군’은「김정일식 경제개혁」으로 이어져 현실경제에서는 경제제도 개편 및 각종 경제정책 추진 등을 통한 북한경제의 생산성 및 효율제고의 형태로 나타나게 된다.
(2) 김정일식 경제개혁
오늘 본 자료
더보기
  • 오늘 본 자료가 없습니다.
해당 정보 및 게시물의 저작권과 기타 법적 책임은 자료 등록자에게 있습니다. 위 정보 및 게시물 내용의 불법적 이용,무단 전재·배포는 금지되어 있습니다. 저작권침해, 명예훼손 등 분쟁요소 발견 시 고객센터에 신고해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