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비판가의 사상과 반론 제기

 1  종교 비판가의 사상과 반론 제기-1
 2  종교 비판가의 사상과 반론 제기-2
 3  종교 비판가의 사상과 반론 제기-3
※ 미리보기 이미지는 최대 20페이지까지만 지원합니다.
  • 분야
  • 등록일
  • 페이지/형식
  • 구매가격
  • 적립금
자료 다운로드  네이버 로그인
소개글
종교 비판가의 사상과 반론 제기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오귀스트 콩트 - 여러 사회적 ·역사적 문제에 관하여, 온갖 추상적 사변(思辨)을 배제하고, 과학적 ·수학적 방법에 의하여 설명하려고 하였다. “절대적인 격률(格率:maxim)은 하나밖에 없다. 이것은 절대적인 것이라곤 하나도 없다는 말이다”라는 그의 말은, 형이상학적(形而上學的) 학설의 의(擬)=절대성을 배격하고, 감각적 경험에 의하여 확증할 수 있는 여러 사실과 이것들의 관계에만 전념한다는 과학적이며 실증적인 상대주의(相對主義)의 입장을 표명하는 것이다. 또한 그의 유명한 3단계 법칙에서는, 인간의 지식의 발전단계를 신학적 ·형이상학적 ·실증적인 3가지로 구분하고, 최후의 실증적 단계가 참다운 과학적 지식의 단계라고 주장하였다. 나아가 실증과학의 체계는 대상의 복잡성에 따라 차례로 수학 ·천문학 ·물리학 ·화학 ·생물학 ·사회학(질서에 대응하는 社會靜學과 진보에 대응하는 社會動學으로 구분된다)으로 성립된다고 생각하였다.
지그문트 프로이트 - 오스트리아의 신경과 의사, 정신분석의 창시자. 히스테리환자를 관찰하고 최면술을 행하며, 인간의 마음에는 무의식이 존재한다고 하였다. 꿈 ·착각·해학과 같은 정상심리에도 연구를 확대하여 심층심리학을 확립하였다.
카를 마르크스 - 흔히 마르크스하면 유대교와 기독교사이에서의 방황과 "종교는 민중의 아편"이라는 그러니까 종교는 민중의 마약이라는 말 때문에 보수적인 종교인들로부터 종교에 반대한 반(反)종교적 인물로 잘못 인식되고 있지만, "종교는 민중의 아편"이라는 말은 종교가 현실의 사회경제적 모순으로 고통 받는 민중들에게 현실 도피적 경향을 나타내도록 기능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르크스가 보기에 종교는 민중들이 내세에만 관심을 갖게 함으로써, 그들의 삶을 고통스럽게 하는 자본의 억압과 착취를 사회비판과 계급투쟁으로 극복하지 못하게 하는 민중의 아편이었던 것이다. 또한 마르크스는 종교를 가리켜 민중의 환상적 행복이라고 했는데, 이 또한 종교를 반대하는 말이 아니라 종교의 현실 도피적 경향을 비판한 말이다 .실제로 민중들은 그들에게 고통을 주는 사회적 억압과 착취를 계급투쟁으로 극복할 방법이 없을 때는 하늘나라, 극락, 메시아, 미륵 같은 종교적 환상을 만들어낸다. 즉, 마르크스는 종교의 현실 도피적 경향을 비판한 것이지 종교 자체를 반대한 것이 아니다.
프리드리히 니체 - 그는 기독교 사상이 인간의 자유의지를 억압한다고 보았다. 근대를 형성해 온 기독교는 개성을 억압하고 인간의 자유를 억압, 파괴하며 이는 삶을 파괴하는 타락의 원인이라 보고, 내세관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시각을 피력하였다. 따라서 자연스러움과 긍정을 통한 새로운 가치를 창설해야 한다고 했다.
니체가 말한 신은 죽었다의 깊은 의미는 그의 철학사상 전반과 관련지어 이해할 때 드러난다. 니체는 소위 망치의 철학자로 일컬어지듯 합리적 근대성마저 해체하고 완전히 새로운 철학을 제시했다. 데카르트 이후 근대성은 이성에 다름 아니다.이성은 중세의 막강한 절대 신성을 부정하면서 탄생했다. 또한 종교와 도덕의 이름으로 과학 문명을 부정하는 것 역시 극복의 대상으로 지적했다.
장 폴 사르트르 - 인간은 신의 소명을 받고 태어난 것도 아니고 심오한 본질을 갖춘 것도 아니니, 오직 끊임없는 실천과 반성을 통해 내 삶을 완성시켜 나가야 한다는 전형적인 실존주의자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즉 다시 말해서 사르트르는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라고 하였다 철학적 사유가 아니라, 실존을 위하여 가혹하리만치 자기 자신에게 가한 비판과 반성에 있다. 신이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의 비판과 반성을 통해서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샤르트르는 "나는 신을 믿지 않는다" "어디 신에게서 자신을 찾아 볼 테면 찾아봐라" 라는 말을 하였다 이 말은 무신론에의 주장이라기보다는 인간의 존엄성, 단독자이면서 전체의 속성을 지닌 실존적 인간, 인간중심의 세계관을 드러낸 것이라고 생각을 한다. 신이 존재함으로 신이 중심이 되는 세계가 아닌 당연히 인간이 사는 세계이므로 인간 중심의 세계를 주장하였다.
위에 다섯분들을 이래 저래 조사해보고 나서 나름 대로의 반론이라기보다 의견을 내보았는데 공통적인 의견은 뭔가 난해하고 이해하기 힘든 내용이 많았다는 말이 많았다. 또 하나는 우리가 정의 한 것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다섯 분들 다 뭔가 실증적이고 진보적인 행동을 취했다는 것이다. 종교에 대해서 실증적으로 증명하려 했다는 말이다. 하지만 종교라는 것이 나약하고 힘든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믿고 의지 할 수 있는 큰 존재라고는 확신할수있다. 어찌 보면 이런 것에 기대는 것 자체가 나약하다고 할 수 있지만 종교에 기대어 무언가를 얻을 수 있다면 그건 바람직한 모습이라고 볼 수 있겠다. 토론하는 중에 종교를 믿지 않는 이도 있어서 왜 이런것을 믿는지 이해 할수 없다는 입장을 표현한 이도 있었다. 그래서 서로간의 의견대립이 팽팽했다고 해야하나? 그래서 처음부터 뜨거웠던 토론내용이였으며 이해하기 힘든 주제 였다.
2. 향벽설위(유교의 제사 방식)와 향아설위(동학 해월 최시형의 사상)의 종교사적 위치를 살펴보고, 진정한 종교의 모습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말해보자.
향아설위’에서 “위“ 는 조상님, 귀신, 어떤 직책을 뜻하고 설(設)은 제사를 베푸는 것을 뜻하며, “아“ 는 나를 뜻하며, ”향”은 방향을 뜻 합니다. 향아설위는 쉽게 말해 나를 향해 제사(조상의)를 베푸는 것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향벽설위는 벽을 향해 조상의 제사를 베푸는 것 . 제사를 베푸는 방향이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매우 재미있고도 중요한 것입니다 , 먼저 향벽설위, 즉 제주를 기준으로 벽을 향한다는 말은 조상의 영혼(이것은 조상을 상징하는 그 무엇을 의미합니다.)이 나를 벗어나서 제사상 너머 벽 쪽에 있다고 가정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향아설위는 조상의 영혼이 제사를 베푸는 제주에게 내재해 있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사실 제사 자체는 우상을 섬기는 것이 아닙니다. 조상을 섬기는 것은 조상에게 예의를 표하는 것이고, 그러한 방법이 실제론 현존하는 자신을 가다듬는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은 우리의 역사와 문화가 만들어낸 미풍양속입니다. 하지만 우상을 섬기는 방법으로 제사를 지낸다면 그 아름다운 미풍양속으로서의 가치가 보존되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3.기독교의 성화와 칭의, 불교의 점수와 돈오를 관련시켜 같은 점과 다른 점을 찾아 이야기 해보자.
칭의 성화에 대한 많은 생각들이 있었습니다 . 칼빈의 말을 따와서 칭의 성화에 대해서 생각해봤습니다. 칼빈이 말하길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게 된 이들에게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순종할 수 있는 새로운 마음이 주어지며, 이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명령대로 순종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고 합니다. 타락 전 인간은 죄를 지을 수 있는 상태였고 타락 후 인간은 죄를 안 지을 수 없는 상태였지만 구속 후 인간은 죄를 안 지을 수도 있는 상태가 되고 이후 영화롭게 된 후에는 죄를 결코 범하지 않는 상태가 된다고 합니다. 즉 이 말은 죄를 지은 인간이 칭의 하여 선한행위(성화)를 함으로써 하느님으로 부터 구원받는다. 요약해 보면 “칭의는 죄를 지은 자가 믿음을 가짐으로써 하느님이 그 죄를 사하여 주는 것인 것 그리고 칭의의 단계에서 멈출 것이 아니라 성화를 통해 구원을 받아야 된다.”
불교의 영성은 참선에 의한 돈오 점수(sudden enlightenment and gradual
오늘 본 자료
더보기
  • 오늘 본 자료가 없습니다.
해당 정보 및 게시물의 저작권과 기타 법적 책임은 자료 등록자에게 있습니다. 위 정보 및 게시물 내용의 불법적 이용,무단 전재·배포는 금지되어 있습니다. 저작권침해, 명예훼손 등 분쟁요소 발견 시 고객센터에 신고해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