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광주 민주화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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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광주 민주화운동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발단 : 1979년 12.12사태로 권력을 잡은 전두환 등 신군부 세력은 학생들을 중심으로 한 시민들의 시위가 계속 되자 5.17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였다. 비상계엄확대 소식을 들은 전남대 대학생 200여명이 18일 아침에 모여 광주 도심지까지가 가 시위를 벌였고 공수부대는 곤봉과 대검으로 시위대를 무자비하게 살생하였다. 19일, 계엄군의 만행에 분노한 광주 시민들이 학생시위에 동참하여 5.18민주화 운동이 전개된다.
과정 : 1980년 5월 17일 - 비상계엄 전국확대, 학생운동 지도부 검속, 광주 각 대학에 계엄군 진주
5월 18일 - 전남대생 50여 명 등교저지. ‘계엄령해제’, ‘휴교령 철폐’, ‘시위공수부대원의 진압으로 학생들이 쓰러짐. 학생들 금남로로 이동 시작
5월 19일 - 11여단 병력 증파. 계엄군의 무자비한 탄압에 맞서 파출소 방화. 공수부대원들과 투석전 전개. 시내 기관장 및 유지들 시위 진압 완화 건의.
5월 20일 - 고등학교 휴교조치. 가톨릭센터 앞 남녀 30여 명 속옷 채로 구타당함. 공수부대와 시민간 공방전 계속. 금남로에서 200여 대의 택시 차량 시위. 광주MBC건물 방화
5월 21일 - 시외전화 두절. 광주KBS건물 방화. 시위대 20사단 병력과 충돌. 공수부대원 전진 배치. 시민들 아시아자동차공장에서 군용트럭, 장갑차 수십 대 획득&탄약고에서 TNT입수. 공수부대 빌딩 옥상에서 시위대에 조준사격. 외지에서 온 시위대들 도청 앞에서 시가전 전개. 학생들 전남대병원 옥상에 기관총 2대 설치. 공수부대 도청에서 조선대로 철수
5월 22일 - 도청광장과 금남로에 시민 집결. 적십자병원 헌혈차와 시위대 지프차가 출혈자를 위해 돌아다니며 헌혈 호소. 도청 옥상 태극기가 검은 리본과 함께 반기. ‘수습대책위원회’대표 8명이 상무대 계엄분소 방문 7개항 수습안 전달. 수습위 대표 상무대 방문결과 보고.
5월 23일 - 학생들 시민들에게 청소 협조 호소. 시민 5만여 명 도청광장 집회. 학생수습위 자체 특공대 조직하여 총기 회수작업 시작. 사망자 명단과 인상착의 벽보 게시. 주남마을 앞 공수부대 소형버스에 총격. 제1차 범시민 궐기대회 개최. 계엄사의 ‘경고문’전단 시내전역에 살포. 최초 석방자 33명 도청광장 도착
5월 24일 - 공수부대원, 저수지에서 수영하던 소년들에 사격. 송암동에서 공수부대와 전교 사부대간 오인 총격전 발생. 제2차 민주수호 범시민 궐기대회 개최
5월 25일 - 김수환 추기경 메시지와 광주항쟁 구호대책비 1천만 원 전달. 제3차 민주수호 범시민 궐기대회 개최. 재야 민주인사들, 김성용 신부의 4개항 수습안 만장일치 채택. 학생수습대책위원들, 범죄발생 예방과 식량공급, 청소문제 등 논의
5월 26일 - 계엄군, 농총진흥원까지 진출. 시민수습대책위원들, 계엄군의 시내진입 저지를 위해 죽음의 행진 감행. 제4차 민주수호 범시민 궐기대회 개최. 학생수습위원회, 광주시장에게 생필품 보급 등 8개항 요구. 제5차 민주수호 범시민 궐기 대회 개최. 학생수습위원회 대변인, 외신기자들에게 광주상황 브리핑. 시민군, ‘계엄군이 오늘밤 침공할 가능성이 크다.’고 공식발표. 어린 학생, 여성 귀가시킴. 시내전화 일체 두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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