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인공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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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중국의 인공위성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21C 우주를 정복하는 자가 전 세계를 지배 한다”는 말이 무섭게, 각국은 우주를 향해 여러 종류의 인공위성 및 우주기(宇宙機)를 쏘아 올리고 있다. 오늘날 인류는 우주 비행 활동에 이미 큰 성취를 얻었고, 생산력의 높은 발전으로 국가 및 사회발전을 촉진시키고 있다.
우선, 가장 많은 인공위성과 높은 기술을 가진 미국을 시작으로, 세계최초의 위성 발사국인 소련(現, 러시아), 그리고 2003년 10월 유인우주선 선저우5호(神舟五)를 발사함으로써 미국·러시아에 이어 세계3대 우주강국으로 부상한 중국 등등, 우주기술은 이미 세계 첨단기술의 무리 중 현대사회에 가장 영향을 미치는 첨단기술 중의 하나가 되었고, 끊임없는 발전과 응용의 우주기술은 이미 세계 각국 현대화 건설의 중요한 밑바탕이 되고 있다. 이에 이보고서는 우주산업의 후발주자인 중국의 우주산업의 시작부터 현재까지의 발전단계 및 상황을 살펴보고, 향후까지 조명해보고자 한다.
본론
1) 세계의 인공위성의 관심
1957년 10월 4일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인 소련의 스푸트니크(sputnik)가 발사된 이후에 세계적으로 수천 개의 인공위성이 발사되었다. 그 중 소멸되거나 회수된 것을 제외하고 약 40% 정도가 아직도 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한편 우주기 중의 97% 가까이가 인공위성이며, 그 중 거의 70%가 군사위성으로 추측되고 있으며, 그 외에도 기상· 자원· 과학탐사· 우주탐사· 통신위성들이 있다. 우주개발에 있어서 구소련과 미국 다음으로 프랑스를 들 수 있다. 프랑스는 1965년 11월에 자국산 로켓으로 자국제의 인공위성 AI를 궤도에 올렸고, 이어 일본(1970년 2월 오스미), 그 뒤를 이어 중국이 1970년 4월에 동팡홍(東方紅), 영국은 1971년 10월 프로스페로 인공위성을, 한국은 1992년 8월 한국 최초의 과학위성 우리별1호를 프랑스령(領) 기아나의 쿠루기지에서 아리안로켓으로 발사하였다. 이처럼 세계 각국은 정확하고 빠른 정보 획득과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앞다투어 투자 및 생산을 하고 있으며, 경쟁도 심해지고 있다.
2) 중국의 인공위성 생산계기와 특징
중국은 이공계 출신들이 政界 최고 요직을 차지하고 있는 나라다. 그 예를 보자면, 강택민(江澤民)은 상해(上海)교통대 전기공학을, 이붕(李鵬)은 러시아 모스크바동력학원에서 수력발전을, 주룽지(朱鎔基)는 청화(淸華)대에서 전기공학을 전공. 후진타오(胡錦濤)는 청화(淸華)대에서 수리공학을, 원자바오(溫家寶)는 베이징(北京)지질대학에서 지질구조학을 전공했다. 이처럼 중국은 이공계(엔지니어) 출신들이 지도층을 형성하고 있는 흥미로운 국가이다. 중국이 이처럼 ‘엔지니어 왕국’이 된 것은 과거 반식민지 역사에 대한 처절한 반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19세기 과학기술혁명에서 유럽에 뒤떨어진 악몽 때문에 건국초기부터 대대적인 ‘과학흥국’ 운동을 시작했다. 50 년대 중기, 모택동은 당 중앙 지도자 집단을 중심으로, 당시 준엄한 국제형세에 대면하고, 제국주의를 배척한 무력의 위협과 핵 위협 으로부터, 국가 안전을 보위하기 위하여, 과단성(果斷性) 있고 자주 독립적으로 “원자탄, 수소탄과 인공위성”을 연구하고 제작하기위한 전략적 결정을 했다. 많은 우수한 과학기술자와, 국외에서 과학자가 들을 소환하고, 심지어 간부, 노동자, 해방군 장병들도 국가적 사업에 발 뻗고 나섰다. 그러나 당시 국가 경제 및 기술 기초는 박약하였고, 노동 환경 또한 매우 열악하였다. 그렇게 80년대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과학기술 장려정책인 1986년 3월 3일 중국의 첨단기술을 세계 선진기술 수준에 도달시키기 위해 발전시킬 것을 원로 과학자들이 건의했고, 이를 中共中央과 국무원이 논증을 통해 이하《 첨단기술의 연구의 발전 계획(“863” 계획)의 개요 》를 비준했다. 863계획은 “有限目·突出重点”방침 하에 생명공학, 우주기술, 정보기술, 레이저 기술, 자동화 기술, 에너지 기술과 신소재의 7개의 분야의 15개 주제를 첨단기술의 연구, 개발의 중점으로 삼았다.
“863계획”을 수립, 시행에 들어갔으며, 또한 중국의 ‘양탄일성(兩彈一星=미사일 원자탄 인공위성⇒원자탄 수소탄 인공위성)’ 개발의 1등공신인 森(전학삼), 1911년 12월 11일 上海에서 태어났고, 본적의 浙江 杭州. 1934년 상하이교통대학의 기계 공학이 졸업, 1935년 미국MIT의 항공계 석사, 1939년 미국 캘리포니아공대 항공, 수학 박사, 캘리포니아공대 부교수를, MIT 교수, 1955년 조국으로 돌아온다. 1959년 8월 중국공산당에 가입했고, 中國科學院 역학 연구소 소장, 국방부의 제5대 연구원 등등 중국의 세계적인 과학자.
전학삼(錢學森)박사 등이 있었기에 오늘날 중국 우주산업의 발전에 큰 계기가 될 수 있었다. 중국이 최근 나노기술과 유전자공학 등 첨단과학 분야에서 비약적인 발전을 보이고 있으며, 2005년에는 유인우주선을 발사시키는 등 우주항공 산업에서도 큰 진전을 이룬 것은 모두 이 계획 덕분이다.
3) “兩彈一星” 이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