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의 운동회와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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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의 운동회와 여행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中國에 온지 벌써3달이 다 되어간다. 韓國에서 있는 시간보다 中國에서 보내는 時間이 더 빠르게 흘러가는 것 처럼 느껴진다. 9월, 10월달은 여기서 먹고 자고 授業에 대한 적응기여서 바빴다면, 11월달은 行事가 많아서 바빴다.
10월 31일부터 3일동안 運動會가 開催했다. 運動會가 始作되기 一週日 전부터 우리는 파키스탄 學生들과 每日 마다 모여서 "WE ARE THE WORLD" 라는 노래에 맞춰 춤을 맞췄다. 처음에 練習할 때는 어이가 없었다. 初等學生도 아닌데 양손에 반짝이를 들고 춤을 추고, 같이 練習하는 파키스탄 學生들과는 말도 안 통하니 서로 힘들었었다. 練習하다가 한번은, 난 열심히 하고 있는데 내 옆에 있는 파키스탄 學生이 계속 간섭해서 눈물이 나올 뻔한 적이 있다. 이렇게 우리는 練習 내내 서로에게 싫은 티를 내가며, 억지로 練習을 했다.
그런데 10월 31일 開幕式 때, 아침에 줄을 서는데 우리 팀만이 아니라 엄청 많은 팀들이 準備를 하고 있었다. 정말 나는 올림픽을 보는 것 같았다. 그 큰 運動場에 選手 入場하는 것 처럼 學生들이 줄을 서있고, 손에는 큰 깃발들을 쥐고 있었다. 그것을 보고 우리는 위압감을 느꼈지만 마음을 다잡고 똘똘 뭉쳐서 우리가 準備한 노래와 춤을 보여주어 많은 拍手를 받았다. 처음에 말도 안통하고 싫어하던 파키스탄 留學生들과 지금은 서로 지나가면 인사도 하며 지내고 있다. 開幕式이 끝나고 각자 競技에 參與를 하였다. 나는 멀리뛰기와 이어달리기였는데, 한번도 練習하지 않았는데 되게 잘할 것만 같았다. 그런데 멀리뛰기 1차시기 때,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고 사진찍고 있는 가운데, 크게 엎어졌다. 정말 창피해서 2차, 3차를 안하려고 했지만, 양 교수님이 오셔셔 記錄은 중요하지 않고, 競技에 參與하는 것에 意義를 두라고 하셔셔 창피함을 무릎쓰고 2차, 3차를 뛰었지만 많은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運動會 둘째 날에는 이어달리기가 있었다. 어제의 멀리뛰기를 挽回하겠다는 生角을 가지고 마지막 주자로 뛰었지만, 우리는 꼴등을 하였다. 어제 일이 너무 창피해서인지는 몰라도 둘째 날에는 별로 창피하지 않고, 競技에 參與하고 九京하며 運動會 자체를 즐겼던 것 같다. 셋째 날에 肺膜을 하고, 運動會는 끝이 났다. 이번에 運動會를 보고 느낀 거지만, 韓國에서 하는 運動會하고는 次元이 틀리다는 것을 느꼈다. 規模도 대단하며, 中國 學生들은 이 運動會를 위해 엄청 열심히 노력하는 것 같았다. 옷도 다들 運動選手처럼 입고 나오고, 신발도 일반 運動靴가 아닌 미끄럼 방지를 위한 運動靴 같이 밑창에 못이 박혀있는 運動靴를 신고 競技에 參與하는 모습을 보며, 놀랍고 대단하다고 느꼈다.
運動會가 끝난 다음날 바로 4박5일 旅行을 떠났다. 11월 3일인 土曜日 저녁 8시쯤 寄宿舍 앞에 모여서 양 선생님과 몇몇 양 선생님의 친인척 분들과 우리는 버스를 타고 기차역으로 갔다. 어른들과 같이 간 理由는 旅行經費도 싸질뿐더러, 4박5일동안 같이 旅行을 다니면서 對話도 하면 會話實力이 많이 늘 것 이라고 양 선생님이 말해주셨다. 우리의 目的地는 이였다. 汽車로 13시간 정도 걸린다고 하여 식겁하였다. 하지만 汽車가 寢臺汽車여서 밤에는 편히 갈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놓이긴 하였다. 寢臺汽車는 처음이여서 정말 신기하였다. 1층 2층 3층이 있는데, 난 2층을 썼다. 올라갈 때 내려갈 때가 무서웠지만, 금새 適應되어 원숭이처럼 오르락 내리락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첫날을 汽車 안에서 보내고, 이틀 째인 점심이 다되어서 에 도착을 하였다. 우린 汽車에서 내려 다시 버스를 타고 분경원이란 곳에 到着을 하였다. 거기엔 징검다리가 있었는데, 1월1일부터 12월 31일까지 징검다리에 쓰여있어서 건너면서 내 생일까지 갔다왔다. 다시 버스를 타고 少數民族이 있는 곳으로 갔다. 신기했던 것은 늙으신 할머니 분들은 머리에 동그란 큰 가발을 얹고 다니셨고, 다들 우리보다 작았다. 꼭 우리가 거인인 것만 같았다. 그렇게 우린 둘러보다가 少數民族의 公演을 보기위해 모였다. 어린 소녀, 소년들이 나팔을 불고, 북을 치며 노래도 부르며 춤을 추었다. 잎사귀로 소리를 내며 노래를 부르는데, 정말 신기했다. 少數民族을 보고, 가까운 食堂에 가서 밥을 먹는데, 入口부터 술을 주어서 처음엔 ‘원래 주는 거는 구나’ 라고 생각했는데, 밥을 먹는 도중 갑자기 그 食堂에 있는 남자 아이가 술을 들고 다니면서, 이상한 노래를 부르며 따라주기 시작하였다. 한잔에서 그치지 않고, 두잔 세잔 계속 따라줘서 어떤 오빠들은 도망가기도 하고, 어떤 오빠는 5잔까지 마셨다. 보는 내내 재밌기도 하고, 불쌍하기도 했지만, 난 오히려 어린 남자아이가 불쌍했다. 어린나이임에도 불구하고, 觀光客들에게 술을 따라주면서 즐거워하는 모습에 안쓰럽기도하면서 이상했다. 우리나라에서 만약 어린 아이가 食堂에서 오는 손님마다 술을 따라주면서 억지로 마시게하면 엄청난 비난을 받게될텐데, 여기서는 그런 모든 것이 그냥 日常처럼 보여서 안타까웠다. 밥을 먹고, 밖에서 잠깐 쉬고 있었는데 그 食堂의 어린 남자아이가 나오더니 이상한 조그만한 것에 불을 붙이더니 막 우리 쪽으로 던졌다. 알고보니 콩알탄이였다. 난 말만 들었지 실제로 보는 것은 처음이여서 진짜 신기했다. 그래서 나도 몇 개를 받아 같이 던지면서 재밌게 놀았다. 너무 많이해서 근방 住民들에게 욕을 먹긴 했지만, 처음 보는 것이 신기하기도 했고, 꼭 戰爭놀이를 하는 것 같아서 즐거웠었다. 버스를 3시간 정도 타고, 드디어 우리가 머물 宿所에 도착했다. 우리가 旅行할 동안 쭉 머물 宿所라고 하였다. 겉에는 정말 우와 할 정도로 호텔 같았다. 방도 들어가서 보니, 中國에 와서 본 제일 좋은 環境이였다. 그렇게 宿所에서 짐을 풀고 하루를 보냈다.
셋째 날이 되어서 우리는 다시 버스를 타고, 아시아에서 가장 큰 瀑布이고, 世界에서 4번째로 큰 瀑布인 황과수 瀑布로 갔다. 말로만 들었을 땐 몰랐었는데, 직접 내 눈으로 보니 정말 거대하고 아름다웠다. 가까이가서 사진을 찍으려는데, 그 물줄기가 거세서 그쪽까지 물이 튀기까지 했다. 황과수 瀑布는 世界的으로 손으로 만질수 있는 유일한 瀑布라고 해서 우리는 직접보고 만지기 위해 힘들었지만 올라갔다. 황과수瀑布의 안으로 사람들이 오고가는 洞窟이 있는데 이곳을 수렴동이라고 한다. 수렴동의 세 번째 창은 돌출되어 있어 그곳에 서서 손을 내밀면 瀑布水를 만질 수 있었다. 물줄기가 아프게 손바닥을 치지만, 모두들 손을 내밀어 瀑布水를 맞았다. 직접 내 눈 앞에서 瀑布가 흐르고, 만져보니 정말 신기하고, 아름다웠으며 자연의 위대함을 알았다. 그렇게 瀑布水를 보고오니, 왠지 뿌듯하고 다시는 보지 못할 景觀에 한번 더 올라가고 싶었다. 宿所에 와서 쉬다가 밖에 布帳馬車 같은 곳에서 5-6명이 술을 마셨다. 그러다 다 마시고 計算을 하려는데, 처음에 300원 넘게 돈을 달라고 하였다. 우린 어이가 없어서 우리가 計算을 해본다고 했는데, 계속 價格이 말이 바뀌어서 결국엔 300원을 주고 나왔다. 제대로 計算하지 않은 주인도 잘못이지만, 처음부터 計算을 제대로 하지 않고 무턱대고 마신 우리의 잘못이 컸다. 그 뒤로 어딜가나 먼저 計算하고 먹는 버릇이 생겼다. 그렇게 사기를 당하고 宿所에 와서 잠이 들었다.
넷째 날에는 洞窟로 향했는데, 洞窟로 가려면 배를 타고 들어가야 돼서 설렘 반 기대 반으로 배를 탔다. 처음엔 놀이공원 같이 느껴졌지만,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潺潺함과 古謠함 속에서의 風景이 너무 아름다워서 말도 없이 구경하며 갔더니 어느새 洞窟 入口에 到着을 하였다. 내려서 洞窟로 들어가는데, 예전에 韓國에서 中學校 때 見學갔던 洞窟과 매우 흡사하였다. 비탈진 곳이 많아 많이 미끄러웠지만 신기해서 구경하며 가느라 그런 危險을 깊이 느끼진 못했다. 洞窟 밖으로 나와서 잠시 쉬고 있는데, 우리 눈 앞에 軍隊에서만 볼 수 있는 공중줄타기가 보였다. 다들 그 것을 보고 꽂혀서 바로 그쪽으로 달려갔다. 처음에 나도 달려가서 보는데, 밑에 安全裝置가 하나도 없어서 진짜 놀랐다. 원래는 밑에 뭐라도 있어야 마음을 놓고 탈 수 있는데 아무것도 없어서 무서웠다. 그런데 오빠들이 앞에서 한명씩 먼저 다 타고 가는데 아무렇지 않게 재밌게 가는 것 같아서 나도 마음먹고 타는데, 내가 그 裝置에 제대로 앉기도 전에 아저씨가 밀어버려서 난 정말 떨어지는 줄 알고, 소리란 소리는 다 지르고 심장이 터지는 줄 알았다. 살면서 한 번 정도는 經驗해 볼만 했지만, 다시 타보라고 하면 절대 타지는 않을 것이다. 무서운 줄타기를 끝내고, 마음을 가라앉히고 다시 버스를 타고 원숭이를 볼 수 있는 公園으로 갔다. 들어서자마자 원숭이들이 떼로 먹이를 주는 사람한테 모여서 달라고 아우성치는 모습에 정말 놀랐다. 그리고 野生이라 그런지 더럽기도 하였다. 그런데 그렇게 많은 원숭이들을 한 번에 보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 신기해서 막 달려가서 보고 있는데, 어떤 한 어미원숭이가 아기원숭이를 등에 엎고 있는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그 아기원숭이를 만지려는 순간, 어미원숭이가 뒤돌아서 나를 막 攻擊하려고 달려들어서 정말 너무 놀라서 소리지르고 울고불면서 오지말라고 소리쳤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창피하고 어이가 없지만, 그 당시에는 그 어미 원숭이가 정말 나를 攻擊할 것 같이 달려들어서 너무 무서웠었다. 느낀게 사람만 母性愛가 강한 것이 아니라, 동물인 원숭이 역시 母性愛가 엄청 강하구나 를 느꼈다. 사람이 자기 새끼를 해하려는 줄 알고, 攻擊하려 한 것이니 나쁜 것은 아니지만, 나도 정말 나쁜 의도는 없었다. 너무 놀라고 무서워서 계속 올라가고 싶지 않았지만, 양 선생님이 괜찮다고 다독여주셔셔 옆에서 같이 올라갔다. 올라가도 올라가도 보이는 건 엄청난 떼의 지저분한 원숭이들 뿐이였다. 내려오는 길에 모든 슈퍼에는 온갖 원숭이 인형들이 있었다. 그것만 봐도 진저리가 날 지경이였다. 정말 이날은 最惡이였다. 줄타기에서 놀란 마음이 가라앉을 때 쯤, 원숭이한테 공격받아서 엄마가 너무 보고싶은 날이였고, 내가 돈내고 旅行온 것이 이 날은 後悔가 되었다.
지친 心身을 이끌고 學校로 돌아가기 위해 汽車를 탔다. 汽車에 타서 같이 온 아줌마 아저씨들이 먹을 것도 주시며 이야기도 같이하면서 時間을 보내다가 열시에 點燈이 되어 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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