天理와 일치하여 인격의 완성에 이르는 것이다. 마음을 수양하고 노력을 오래한다면 자연 마음과 이치의 내외가 서로 하나로 용납되어 모든 것이 녹아서 관통한다. 즉, 객관과 주관이 서로를 받아들이고 섞이어 관통된다. 이것이 정주와 퇴계 心學의 본질이다. 그러므로 심학의 목적은 내외內外 주객主
天理大學) 이마니시문고(今西文庫) 소장본 『기재기이』에 실려 있다. 규장각 도서 『수성지(愁城志)』에 「수성지」와 함께 필사된 것이 있다.
위 두 작품을 통하여 인간은 이상형인 신선*선녀의 세상에 살고 싶은 마음을 소설로 표현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김시습의 작품은 신선*선여와 관련된 작
Ⅰ. 서론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성리학자인 퇴계는 ‘존천리알인욕(存天理?人慾)을 통한 구인성성(求仁成聖)’이라는 자신의 지향처를 세우고, 이를 이루기 위하여 평생을 노력해 온 인물이다. 그의 거경궁리(居敬窮理)를 위한 노력이나 정좌수련법 등은 오늘날에도 충분히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는
天理)에 바탕한 제도를 구현하자고 강조하면서, 궁극적으로 옛 도에 복귀하는 개혁의 당위성을 주장했다. ‘천리·인도는 고금동서를 막론하고 다를 것이 없으므로, 이를 따르고자 어기지 않으면 옛 도를 회복할 수 있다.’ 한국실학사상사/ p.94
또한 그는 천리의 실(實)은 인간의 내면적 체인(體認)에
天理)에 따르는 예제의 확립을 추구하며, 성리학의 바탕 위에 예의 형식적 준행이 아니라 의식적이고 자율적인 준행을 추구하였다. 따라서 성리학과 예학은 이론과 실천의 관계로 이해 할 수고 있다. 한국철학사 연구회, 『한국철학사상사』, 한울, 1997, p.218참조
3) 왕실의 전례(典禮) 논쟁으로 인한 파
天理)’이다. 장승구 외. 『동양사상의 이해』, 경인문화사, 2002, p258.
③이치로서의 천
천을 이치로서 말하는 것은, 이치를 자연현상 및 조화, 발육의 객관적 법칙으로 삼는 것이다. 즉 형체로서의 천 및 그 운행은 일정한 법칙이 있으니, 그 자연현상의 법칙이나 조리를 천리라고 한 것이다. 이러한 천리
天理(천리)에 따르는 禮制(예제)의 확립을 추구하며, 성리학의 바탕 위에 예의 형식적 준행이 아니라 의식적이고 자율적인 준행을 추구하였다. 따라서 성리학과 예학은 이론과 실천의 관계로 이해된다. 둘째, 왕실의 전례 논쟁으로 인한 파급효과이다. 인조대의 원동추숭문제와 현종대의 자의대비 복상
天理之明].”는 뜻으로 풀이했다.
“사람의 말은 바람소리가 아니다. 말에는 말하고자 하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말하고자 하는 의미를 유독 확정할 수 없다면 과연 말이 있는 것인가. 아니면 일찍이 말이 있지 않은 것인가. <사람의 말>은 막 태어난 새끼 병아리의 <무의미한> 울음소리와 다르
天理요 마음은 기의 작용이라고 보았다[기지정상氣之精爽]. 여기서 본성과 마음은 상하관계가 되는 것이다. 주자학에서 마음은 결코 형이상인 이가 될 수 없다. 그러나 양명학은 이기는 물론 마음과 본성을 구분하지 않고 마음이 바로 천리라고 본 것이다. 여기에서 본체[理]와 작용[氣]은 하나가 되는
天理)의 절목 또는 인간사의 의칙(儀則)이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 가치관이 양심에 의거하여 자율적으로 교양의 차원에서 행하여지는 데에 예의 특성이 있다. 즉, 이 점이 같은 규범 법칙인 법과 다른 점이다. 가치관의 소산이 예이므로, 예 사이의 충돌마찰 현상의 여부는 곧 가치관이 얼마나 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