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강 유역 문명설, 마지막으로 고고학적 연구를 통한 발해연안 문명설인대, 이 세가지 모두 자생적 문화 기원설에 그 토대를 둠으로써, 한국신화의 정체성을 찾는 눈길을 외국신화의 분석방법이 아닌, 주체적 자의식을 가지고, 한국의 신화문화 속에서 찾아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한국신화의 본디
문명권들이 있다고 본다. 서구(서유럽과 미국), 중화. 일본, 힌두, 이슬람, 정교, 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가 그것이다. 이 문명권들은 각각 중체적인 생활방식의 체계로서 나름대로의 “가치, 기준, 제도, 사고방식”을 갖추어 독자성을 띠고 있다. 따라서 이 문명권들은 상호호환이 불가능하고, 서로 수
문명권의 단결을 촉구하는 수단으로 이용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중요한 논점 중에 하나는 문명적 대립구도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는데도 정치를 이용하다고 보고 있다. 우리는 자신이 무엇이 아닌지를 알 때만 아니 자신의 적수가 누구인지를 알 때만 내가 누구인지를 알게 된다는 것 이다.
정체성을 확보하려는 욕구가 자리잡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헌팅턴은 기본적으로 세계를 ‘우리’와 ‘그들’의 대립으로 단순화시키는 오류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다양한 문명권이 공유하는 공통점을 찾아야 한다는 헌팅턴의 주장에 대해서도 많은 이들이 문제를 제기한다. 이미 인
정체성을 강조하게 되었고 이에 따라 단군과 단군 조선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13세기 말 몽골 간섭기에 단군과 단군 조선에 관한 상세한 기록은 삼국유사와 제왕 운기에 보인다.
조선시대에는 고조선은 우리 역사의 기원으로 확고히 자리잡았다. 조선 왕조의 지배세력들은 단군과 관련된 비합
정체성을 재인식하고 자기문명이 보편문명이 아닌 특수한 것으로 받아들이면서 비서구사회로부터 오는 위협에 맞서 유럽과 힘을 합쳐 자신의 문명을 혁신하고 수호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있다고 말한다. 즉 미국의 역할 재인식과 미국과 유럽의 단합을 통해 위협에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서
문명권 안에 있더라도 많은 사람들에게 득이 되며 바람직한 것이 있고 반면에 소수에게만 유리하고 바람직하지 못한 것이 있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문명이 더 우위에 있다고 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문명국가들이 서구문명에 대해 반드시 호감을 보여야 하는 것은 아니며 호감을 갖지
정체성의 위기를 극북하기 위하여 이러한 상황으로 변모 한 것이다. 이러한 문화적 동질성으로 또한 다른 이질성을 같게 되는 것이다. 어떠한 경계로 그룹을 나눈 다는 것은 또 다른 이질성을 낳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대부분의 문명은 문화의 근원을 문화적 중심 국가 안에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고
문명권의 사람이 타 문명권의 사람들을 정복하여 복속시켰을 때 일어나는 경우이다.
둘째는 격돌이다. 크리스트교권은 8,9세기쯤에 독자적 문명으로 등장하여 오랫동안 유럽의 문명 수준은 다른 문명들에 비해 낮았으나 르네상스 문화가 안정기에 접어들었고 사회적 다원주의, 무역의 팽창, 기술 발전
정체성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세운 기준이 혈연, 신앙, 믿음, 가족 등이다. 유렵열강의 경우 서유럽연합으로, 중동은 이슬람권으로 뭉치는 등 문화적 동질감이 있는 국가끼리 뭉치고 있다.
문명의 질서는 핵심국 그리고 그를 둘러싼 소속국으로 이루어진다. 중심이 되는 문명을 말하자면 서구문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