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서론
9·11 테러 사건에 대해 보복 및 응징의 성격을 띠고 시작된 미국의 아프가니스탄전쟁이 약 9년째 되었다. 아프가니스탄은 바로 10여년 전까지 소련과 전쟁을 치른 나라이다. 소련이 아프간을 침공할 당시, 모든 사람들은 그 전쟁을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으로 생각했었다. 이때 다윗이 골리
전쟁(1973년) :욤키푸르 전쟁
7. 아프가니스탄전쟁(2001년 10월 7일~현재)
-2001년 9·11테러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과 영국에 의해 실시된 항구적 자유 작전(OEF : Operation Enduring Freedom)으로 시작됨.
-명시된 침략 목표는 오사마 빈 라덴을 체포하고 알 카에다를 파괴하며 탈레반이 알 카에다를 지원하
전쟁을 일으켜 20일 만에 완전 함락시키고 새로운 과도정부를 출범시키는 등 대 테러 전쟁을 계속했다.
2002년 1월 미국은 북한·이라크·이란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였다. 그 후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WMD)를 제거함으로써 자국민 보호와 세계평화에 이바지한다는 대외명분을 내세워 동맹국인 영국·오
탈레반 정권을 지목하면서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했고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과 이라크 후세인 정권을 붕괴시켰다. 그러나 이후의 사태 수습은 잘
되고 있지 않은 듯하다. 미국에 대한 세계적 여론도 악화되었고 이슬람 세계의
반미주의와 저항 세력의 거센 반발을 초래하여 테러와 보복이라는
협조요청을 거부하지 않았다. 아프가니스탄전쟁은 9.11테러의 연장선상에서 시작되었다. 따라서 본론에서는 동일한 사건이나 경험에 대해 식민지/주변부의 시각을 통해 서양문화를 바라보는 것과 중심부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은 어떤 차이가 있을 수 있는지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논해 보겠다.
전쟁 분위기를 조성했지만 테러가 없었더라도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공격(전쟁)은 이루어졌을 것이다. 테러 발생 직전인 12일 새벽 미군함정이 아프가니스탄의 수도에 순항 미사일을 퍼부은 사실은 무엇을 말하나? 그리고 탈레반 정권이 미국 말을 듣지 않으면
전술 핵무기로 공격하겠다고 선언한 것
2)탈레반전쟁
<탈레반>
탈레반이란, 1994년 10월, 2만 5000여 명의 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아프가니스탄 남부 칸다하르에서 결성한 수니파(派) 시아파(Shiis)와 수니파(Suunis)는 이슬람교를 양분하는 분파로, 현재 수니파가 전세계 10억 이상의 이슬람 교도들 중에서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간단히 정리하자
아프가니스탄으로 파견 시작, 현지
도착 후 필요 장비 확보 및 본격적인 작전 계획 수립
11.3. 12:00 특수임무부대 본대(전투병력 및 지원병력) 아프가니스탄 파견
11.5~7. 특수임무부대의 아프가니스탄 현지 적응 및 미군 특수전 부대와의 합동훈련
11.9. 20:00 작전 시작. 중간
전쟁』, 이지북, 287~289면
이처럼 아프가니스탄은 마약의 주요 생산국인데 당장 마약의 원료재배를 금지할 경우 국민들이 생계를 유지하기 어렵다는 큰 문제가 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탈레반 등 이슬람근본주의 세력들이 마약을 무기 구입 등의 군사 활동을 위한 자금으로 사용한다는 데 있다.
전쟁에 참여한다. 이제 전쟁은 중공군과 북한군, 그리고 유엔군과 국군의 대결이 되었다. 다시 북한군과 중공군에 의해 밀려 내려가게 된 유엔군과 국군은 다음 해인 1951년 1월 4일 서울을 내주고 후퇴한다.
6) 긴 휴전 협상과 휴전
1951년 5월 이후 전투는 지금의 휴전선 부근에서 한 번은 국군과 유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