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닿지 않는 문제들이 많다.
이 글을 통해서는 객관적인 자료를 토대로 박정희시대이전의 경제적 상황을 알아보고, 박정희시대의 경제적인 성과가 어느 정도였는지 알아 본다. 그 과정에 따른 경제 외적인 문제점들은 제외하고, 경제정책의 과정과 성과에 초점을 두어 논의를 이끌어 갈 것이다.
평가를 받고 있는 박정희라는 인물은 주제로 삼을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고, 수박 겉 핥기 식으로 알고 있는 역사에 관해 조금 더 세밀하게 알아보고 싶었다.
그러다가 다시 제기된 인물이 김대중이었다. 한국의 현대사에는 여러 쌍의 역사적 라이벌이 있다. 이승만과 김구, 박정희와 윤보
여전히 10.9%로 미국의36%나 영국의30%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치를 보이고 있다. 이에 더하여 생계형 범죄의 등장,결식문제증가,아동유기,이혼증가,노숙자 출현 등은 과거 몇 번의 확장 국면을 거치면서 구축되어 온 한국의 복지제도가 실제 위기상황에서는 제대로 작동되지 못함을 잘 보여 주었다.
경제, 사회 등 여러 분야에 걸쳐 그의 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비교적 최근부터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주장이 하나 있다. 바로 ‘뉴라이트’ 세력의 주장이다. 그들의 주장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박정희시대의 경제 개발 및 성장은 식민지 시대의 정책들에 의한 것이다’ 라는 주장이다.
경제적 측면의 이해 - 성장과 차별의 이중주
박정희 집권 하에서 한국의 경제는 큰 폭으로 성장하였고, 수출 100억불 돌파 등 가시적인 성과도 드러나던 시기이다. 하지만, 가시적인 부분의 괄목할 만한 성장과 더불어, 보이지 않는 부분에서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고, 특히나 경제발전에
경제력 신장에 비해 상대적으로 미국의 경쟁력이 약화되자 1971년 닉슨은 달러화 금태환의 일시정지, 대외 경제협력자금등의 삭감10%수입 과징금 부과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경제 긴급조취’를 발표하고 신 보호주의 시대의 서막을 열었다.
1972년 달러화의 평가절하와 경공업제품의 수입규제를
경제발전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거시경제 안정화정책이나 미시적 구조조정 정책의 시행 뿐만 아니라 사회 내의 다양한 세력들 간의 연대와 이에 기초한 광범위한 정치·경제·사회적 구조개혁이 필요했다.
논의의 진행은 한국경제에 찾아온 위기가 시대별로 어떤 양상을 지녔으며 그것이 발생하게 된
경제영역에 국한되지 않았으며 한국사회 전체에 비가역적 변화를 초래했다. 현재의 한국사회는 거의 모든 영역에서 이러한 변화의 결과이자 과정이다. 이 과정을 주도한 것은 5?16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를 정점으로 한 일단의 군부 세력이었다. 이들은 ‘조국근대화’, ‘민족중흥’을 핵심 슬로
세계 34위이다.
이러한 성과의 중심에 대기업이 있었음을 부정하기는 힘들다. 최근에도 많은 대기업이 치열한 글로벌 경쟁 속에서 선전하고 있으며 한국의 위상을 드높이고 있다. 그러나 실상 한국 사회에서 대기업에 대한 평가는 좋지 않다. 기업의 사회적 정당성에는 위기가 닥치고 있는 상황이다.
경제성장의 인프라로 도로, 철도, 건설, 전력시설과 같은 것도 정부 주도로 자금을 몰아 주어 확충해 갔다. 1962년 울산공업단지를 만들었는데 정부가 땅을 고르고 산업단지를 만들어 기업들에게 싼 값에 분양하고 상하수도와 각종 인프라 시설을 제공해 가며 집중적으로 육성했다. 이는 결과적으로 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