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도적으로 계획되고 조정되는 <의식적 창작>과 자연발생적으로 직관의 과정을 통해 떠오르는 <무의식적 창작>의 과정이 공존하는 창작 활동의 영역에서는 그것의 영향력이 현저히 감소한다. 전자의 활동 영역에서는 윤리와 관습, 그리고 금기와 같은 이미 확정된 영역을 고집하는 의식의 보수적 경향
우리의 문학사는 국문문학과 한문문학이 병존한 상태로, 한자문학이 주류를 형성하면서 전개되어왔다. 금세기 초엽에 이르기까지 우리 문학사에서 주류적으로 발전했던 한문학은 보편적 형식에 민족적 생활의 내용을 결합시킨 것으로 그 대체적인 성격을 규정지을 수 있겠다. 다시 말하면 한문학은
Ⅰ. 들어가며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당시 허위의식에 빠진 사회의 세태를 비판하면서 당시 중국의 선진 문물을 배우고 실천하려고 하였던 북학의 선두 주자 박지원의 <허생전>과,
문체반정으로 인해 타락한 문체를 쓰는 '문제의 인물'로 거론되어 고초를 겪고 벼슬길이 막혀 불우한 일생을 보낸 이
조선 후기의 실학자이자 소설가
실학파 중에서도 이용후생(이로운 것을 받아들여 생활을 후하게 하자)을 강조하였던 북학파의 중심인물이었다.
젊은 시절부터 장래가 촉망되었고 특히 문학에 뛰어나 당시 문형을 지낸 인물로부터 그 자리를 이을 사람이라는 호평을 받기도 하였다.
당시의 당파싸
2. 실학 학파의 분류
학자들의 주장의 내용과 시대를 아울러 고려하여 이익을 대종으로 하는 경세치용파, 박지원을 중심으로 하는 이용후생파, 김정희에 이르러 일가를 이루게 된 실사구시파로 나누고 이 3개 유파의 집대성자를 정약용으로 보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1) 경세치용파 (중농학파)
농
이용후생’, 그것이 우리가 아는 ‘박지원’과 그의 최고의 작품 ‘열하일기’였다. 얼마 전 외국인 번역가들이 박지원의 ‘열하일기’가 세계명작으로 손색이 없을 만큼 뛰어나다고 말한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외국인들도 인정하는 우리의 고전을 한 번쯤은 제대로 읽고 그 속에 담긴 의미를 되새겨
Ⅰ.서론
임진왜란 이후 조선 사회는 그 자체 내의 모순을 스스로 드러내고 그것을 해결하려는 노력을 보인다. 그리고 영〮〮 ․ 정조 시대에 이르면 그 변화가 나름의 이론적 배경과 거기에 상응하는 운동을 보이게 되는데 그것은 한국 사회가 자체 내의 구조적 모순을 상상적 기호로서
이용후생의 북학파(北學派)로 나누어진다. 그들이 중점을 두고 있는 면에서 이들 학파들은 상이한 면도 있으나, 이들의 이념과 방법에 있어서는 당시 관념적인 주자학파의 입장에서 벗어났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이 주장하는 이용후생(利用厚生)에서 이용은 사용하기에 편리한 각
1. 중상주의
중상주의는 서구의 15세기 말경부터 18세기 중엽에 걸쳐서 중세적 경제조직이 해체되고 산업혁명에 의해 지배를 확립하기까지의 초기 단계에서 원시적 축척을 수행하는 데 사용된 여러 정책과 이를 뒷받침한 이론체계이다. 이 시기에는 기독교도들이 십자군원정으로 동서문명이 상호 교
이용후생학파의 거두로, 조선 후기 사회의 모순을 타파하고자 개혁을 주장했던 실학자이자 뛰어난 문인이었다.
연암이 살았던 18세기 조선 사회는 도시와 농촌에 걸쳐 커다란 변화가 일어나고 있던 시기였다. 정치적으로는 사대부들의 관권쟁탈(官權爭奪)이 극심해지면서 벌열(閥閱)이 형성되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