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으로 밀려나고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되었으며 미소점령군이 한반도에서 철수했다. 1950년 초 미국의 방위선에서 한반도가 제외된다는 에치슨 선언은 동북아 지역 환경의 중대한 변화를 가져왔고 이는 곧 한국전쟁으로까지 이어져 신생 한국외교정책은 안보문제가 최우선의 과제로 현실화되었다
대만)으로 패주한 장제스 세력을 중국의 정통 권력으로 인정함으로써 중화인민공화국을 외교 및 경제적으로 고립시키고자 했다.
이러한 시기에 일련의 군사 활동을 통해 미국의 직접 개입을 견제하고, 마오쩌둥의 공산정권을 지지한 것이 소련이었던 것이다.
공산주의 종주국이라는 이념적
외교 공방이 지속되고 있다. 유철종, “동아시아 국제관계와 영토분쟁” p373
양측은 군사력을 증강하고 군사훈련을 실시하면서 더욱 강경한 입장을 취했다. 5월에는 베트남 국방장관이 남사군도를 방문해서 병사들의 사기를 북돋아주고 중국군과 전투를 가상하는 해공군 합동훈련을 실시하기도 했다
외교 전략은 큰 틀에서 보면, 미일동맹을 근간으로 해서 한일동맹을 유지 강화하고 대만 및 동남아 국가들과의 유대관계를 긴밀히 함으로써 중국과 북한을 포위 견제하는 데 있다. 이는 궁극적으로 중국과 북한에 대한 ‘광역 포위망’ 구축에 목적을 두고 있다. 이를 통해 일본은 동아시아에서 중국의
주최하였던 제 4차 열린 동북아 포럼 (전남대학교, 2006. 6. 8)에서 발표한 논문에서 발췌. <전망이론으로 본 미국의 동북아 외교정책 - 강경룡 ->
<이미지 출처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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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입장에서 볼 때, 일본과의 관계는 반드시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야 하며,
1. 한/중 외교관계의 역사
냉전기 시대의 관계
- 중국의 안보외교정책은 한국이라는 국가체제를 인정하지 않음
- 중국의 한국전쟁의 참가로 인한 영향으로 한국 적대적인 국가로 갈라짐
- (대만-한국)
- (중국-북한)
냉전기 시대의 관계
-1978년 12월 중국 공산당 제11기 3중전회의 결정으로 중국
외교적 요인
한국은 1953년~1956년 기간에만 총 17억 달러의 원조를 미국으로부터 받았다. 미국의 원조는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고 총수입의 70%를 지원하였을 뿐만 아니라 전후 복구 상업비용으로 쓰여져 이승만 정권의 유지에 절대적인 기여를 하였으나, 이러한 막대한 액수의 무상원조는 국가의 지속적
대만과의 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해오고 있었다.
이를 간략하게 살펴보면, 중국은 1949년 건국 초기에는 주로 안보와 상호 적대적 이데올로기 때문에 한국과의 공식관계를 원하지 않았다. 중국은 사회주의 동맹국을 보호한다는 차원에서 한국전쟁을 참전하였고, 그 후 60년대까지 북한을 ‘미제국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