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가 제외된다는 에치슨 선언은 동북아 지역 환경의 중대한 변화를 가져왔고 이는 곧 한국전쟁으로까지 이어져 신생 한국외교정책은 안보문제가 최우선의 과제로 현실화되었다 한국전쟁은 민족사적으로 남북한이 하늘을 함께 할 수 없는 대상으로 상호불신과 적대감을 갖게 한 사건이었다.
제하에서 제1공화국의 대외정책은 반공외교, 안보외교, 군사외교라는 틀 속에서 나름대로 일관성이 있었다고 보여 진다. 또한 대미 의존적인 군사동맹은 그 이후 한국외교 군사외교의 자주성 문제를 남겨주었다. 특히 분단과 휴전상태는 통일 휴전상태의 종식이라는 제2의 건국외교의 과제를 남겨둔
Ⅰ. 서론
대통령은 국가의 수반으로서 국가공동체가 영위하고 있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사회현상이 당면한 문제의 해결, 현재와 미래에 대한 방향설정 및 목표를 제시하고, 국가공동체 구성원의 삶에 대한 양적, 질적 측면 모두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위치에 있다. 그런 의미에서 국가지
한국은 미국과 군사동맹 관계를 갖고 미국의 공산국가에 대한 봉쇄정책에 참여하게 되었다. 따라서 한국은 대외적으로 또 전략적으로 미국과 동일 보조를 취하게 되어 자연히 한국 외교는 국제적 상황 측면뿐만 아니라 미국의 대외정책이나 전략에 따라 행동하고 정책을 결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경제근대화 이후 한국정치의 비젼을 제대로 제시하지도 못했고, 재임 중 수천억 원에 이르는 불법 정치자금을 ‘관행’이란 명목으로 거두어들이는 ‘범죄’를 저지름으로써 한국정치를 더욱더 비리와 부도덕의 수렁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만들었다.
한편, 김영삼/김대중 대통령은 합법적인 선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