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효자 뫼르소에 향한 비난을 더욱 많이 했다고 한다. 부모의 죽음을 알고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태연하게 해수욕을 즐기는 뻔뻔한 뫼르소의 후안무치한 모습을 더욱 견디기 힘들어 했던 것이다. 뫼르소는 분명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소수의 이방인과 다를 것이 없다. 그러나
책 중간에 어머니가 노처녀 채영신의 혼례문제로 의견이 맞지 않아 어머니한테 드리는 이야기가 있다. “나는 어머니가 낳아서 길러 주신 어머니의 딸이지만 어머니 한 분의 딸 노릇만은 할 수 없다우, 알아 들으시겠수? 어머니 한 분한테 불효하지만, 내딴엔 수천 수만이나 되는 장래의 어머니들을 위
불효, 번잡한 성행위에 의한 낙태 및 사생아 문제 등의 사회 문제는 알지 못해서 일어나는 사회적인 사건들이다. 현대 사회에서 노인들의 외로움은 생계유지를 위한 일에 전념하느라 여가 선용을 위한 시간을 갖지 못하여 여가활동에 대한 지식과 자신감이 부족하여 적극적인 여가 생활을 하지 못한다.
날 며칠을 울기도 하고 떠난 사람을 마음에서 놓아주지 않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3장은 이에 대한 법륜스님의 시원한 대답이다. 살아있을 때 후회 없이 잘해주고 떠나면 보내주라는 것이다. 불효자는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후회가 남기에 울지만 효자는 최선을 다했기에 울지 않는다는 말씀도 있었다.
지를 살펴보면, 서로 사랑하지 않는 데서 비롯한다… 만일 천 하로 하여금 서로 사랑하게 하여, 남을 자기 몸 사랑하듯이 한다면 어찌 불효자가 있겠으며… 남의 집을 자기 집 보듯이 한다면 어찌 도둑이 있겠으며… 남의 나라를 자기 나라 보듯이 한다면 누가 공격하겠는가? 「묵자 下 참조」
불효, 조나라, 위나라등 시국에 따라 움직이며, 힘든 삶을 보내다 73세 세상을 떠나게 된다. 그의 말씀인 ‘논어’는 구전되 후세에 전해지며 맹자나 순자 등 옛문헌에 공자의 말이 인용되는 것을 볼 수 있는 것이 전부이며 논어라는 서명은 공자의 말을 모아 간추려서 일정한 순서로 편집한 것이라는 뜻
불효한 자와 상전을 배반한 종들이 승려가 되어 관가의 눈을 속이기도 하였다. 사찰에서는 이들을 포용하였으나 지배자의 처지에서 보면 이것이 모두 사회질서를 어지럽히는 빌미가 되었다.
절은 대토지를 소유하고 많은 노비를 거느렸으며 승려들은 호사스런 생활을 누렸으며, 각종 불사도 극도로 사
불효자식에 더 가깝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어찌 보면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의 갈림길에 놓인 심청이가 훨씬 더 선택을 하기가 쉽지 않았나 싶다.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사랑하지도 않는, 더군다나 돈이라는 이유 때문에 시집을 가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하는 것이 점순이에겐 더 수월했으리라. 하지만
불효자식들의 어머니에게 연민을 느끼기보단 그녀에게 냉소하고 있었다. 그리 애지중지하던 자식들이 아닌 천덕꾸러기 재우에게 떠맡겨진 심정이 어떠냐고.
어머니는 배설조차 제대로 처리할 줄 모르고 심한 욕을 아무에게나 해댔다. 재우는 자신이 편하기 위해 어머니 방에 자물쇠를 채우고, 어머니
불효한 것이 마음에 걸린다며 못가겠다고 하는 딸까지 오는 끊을 수없는 즉, 이 영화에서의 주된 메시지라고 볼 수 있는 가족애를 느끼며 볼 수 있다. 한 번도 장례식장이나 상갓집에 가보지 못한 나는 ‘학생부군 신위’를 보낸 내낸 간접적적으로 나마 장례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어 신기하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