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가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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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묵가 사상
1. 묵자의 생애와 시대적 배경
묵자는 성이 ‘묵(墨)’이고 이름은 적(翟)이다. 그의 생애에 대해서는 역사적 기록이 많지 않아 자세한 것을 알기는 어렵다. 중국의 역사학자 첸무는 묵자가 기원전 479년경에 태어나 381년경에 세상을 떠난 것으로 보았고, 최근까지 ‘중국묵자학회’를 이끌어 온 런지위는 묵자의 생존연대를 기원전 480~420년경으로 보았다. 『묵자』를 비롯한 여러 자료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보면 묵자가 묵자를 창시해 활동한 시기는 기원전 450~390년경으로 보인다. 묵자가 태어난 나라는 어디인가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최근 유력한 것은 노(魯)나라의 등()이라는 곳으로 지금의 산둥성 등주시 근교에 해당한다. 등은 공자의 출생지인 추()와 맹자의 출생지인 추(鄒)와도 가까운 곳으로 『묵자』나 『맹자』를 통해 묵자와 그 제자들의 집단이 유가의 집단과 서로 논쟁하고 교류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묵자는 과학기술의 지식이 뛰어났을 뿐만 아니라 유학을 공부하고 역사 문헌을 많이 읽어 학식이 풍부했다. 후에 그는 수공업을 하는 계층에서 벗어나 일반 서민들보다 높은 계층인 사의 반열에 들어갔다. 그는 스스로 “나는 위로는 임금을 받들어야 할 일도 없고, 아래로는 밭 갈고 농사짓는 어려움도 없다”고 말했는데, 이를 봐서도 그가 벼슬을 하지 않았지만, 농부도 아닌 중간 계층임을 알 수 있다. 묵자는 공자의 사상을 공부했으나 점차 유가의 학설에 불만을 가지게 되어 자기의 학설을 체계화하는 한편 엄밀한 학파로서의 묵가를 창립했다. 그는 공개적으로 유가의 학설을 비판함으로써 유학의 반대파가 되었다. 그는 교육에 종사하면서 유세 활동을 계속했다. 그의 문도들은 대부분 수공업자들이었는데, 교육의 내용은 그의 사회정치사상과 철학사상, 도덕관념, 과학이론과 기술방법 등이었다. 박문현 『묵자, 사랑과 평화의 철학』살림 2013 p.6-8
2. 묵가의 사상
(1) 삼표
공자가 어질 인의 마음으로 인간이 잘살 수 있는 인문현실세계를 건설하라는 도덕인문의 도를 제시했다고 한다면, 묵자는 시비와 이해의 구별을 분명하게 판단하는 세 가지 표준을 제시했다. 그것이 바로 삼표다. 묵자의 사상은 이 삼표를 출발점으로 전개되어 나갔고, 또한 이 삼표를 모든 논증의 기초로 삼고 있다. 그는 삼표에 의거하여 말하고 살아가야 한다며 “그 근본을 두어야 할 것이 있고, 그 연원을 살펴야 할 것이 있고, 그 효용을 보아야 할 것이 있다. 어디에 그 근본을 두어야 하는가? 위로는 옛날 성왕의 일에 근본을 두어야 한다. 어디에서 그 연원을 살펴야 하는가? 아래로는 백성들이 보고 들은 사실에서 연원을 살펴야 한다. 어디에서 효용을 보아야 하는가? 형정(刑政)에 펼쳐서 그것이 국가와 백성과 인민의 이익에 맞아야 하는지를 보아야 한다. 이것이 이른바 말에는 삼표가 있다고 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그는 첫째, 옛날 성왕의 일에 근본을 둔다고 하였다. 이것은 과거 성왕이 경험을 통하여 이룩한 일의 성과에 비추어서 검증한다는 것으로 업적주의적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 백성이 보고 들은 사실에서 연원을 살핀다고 했다. 이것은 여러 사람들이 직접 경험한 사실에서 검증한다는 것으로 실증과학적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셋째, 국가와 백성과 인민의 이익에 효용성이 있는가를 본다고 하였다. 이것은 실용주의적 근거를 가지고 검증하려는 것으로 공리주의적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묵자는 어떤 주장을 반대할 때도 이 삼표에 의거하여 반대했고, 어떤 주장을 찬성할 때도 이 삼표에 의거하여 찬성했다. 특히 묵자는 세 번째 공리주의적 가치를 최고의 가치로 삼았다. 김백현 『중국철학사상사』차이나하우스 2007 p.30-46
(2) 겸애와 교리
‘겸애(평등한 사랑)는 묵가가 추구한 도덕적 이상이자 정치적 주장이다.’ 특히 이것은 ‘교리(상호 노동성과의 존중)’와 불가분의 관계를 지닌다. 공자는 ‘인이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의 사상을 제기함으로써 유가의 근본이념을 형성하였지만, 이것은 실제로 서주 이래의 종법질서에 기초한 관념으로서, 묵가의 입장에서 보면 편애에 불과한 것이다.
묵자는 당시 혼란한 상황에 직면하여 직접 열국을 유세하였고, 한편으로는 문도를 모아 천하의 해악에 대한 자신의 대안을 제시하고 그것의 이로움을 실현하고자 하였다. 그는 당시 정치, 사회적 혼란의 원인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다.
지금의 세상에서 가장 큰 해악이 되는 것은 무엇인가? 말하자면, 대국으로서 소국을 공격하는 일, 대가로서 소 가를 어지럽히는 일, 강자가 약자를 협박하고, 다수가 소수를 폭행하고, 사기꾼이 어리석은 자를 속이며, 귀 한자가 천한자를 업신여기는 일, 이것이 천하의 해악이다. 또한 군주로서 은혜를 베풀지 않는 일, 신하로서 충성하지 않는 일, 아비로서 자비롭지 못한 일, 자식으로서 효도하지 않는 일, 이 또한 천하의 해악이다. 또 한 지금의 천한 무리들이 무기와 독약을 가지고 서로 위해 가하는 일, 이 또한 천하의 해가 되는 것이다. 결국 천하의 모든 혼란은 서로 겸애하지 않는 데서 비롯된 부조리이다. 「묵자 下」 정승구 외 『동양사상의 이해』경인문화사 2012 p.147 : 1-13
묵자는 이와 같은 당시 정치, 사회 문제의 원인 분석을 기초로 하여 해결 방안을 제시하였다. 그것이 다름 아닌 겸애이다.
성인은 천하 다스리는 것을 일삼는 자다. 반드시 혼란이 어디로부터 비롯되는 지와 그것을 어떻게 다스려야 할 지를 알아야 한다… 혼란이 어디로부터 비롯되는 지를 살펴보면, 서로 사랑하지 않는 데서 비롯한다… 만일 천 하로 하여금 서로 사랑하게 하여, 남을 자기 몸 사랑하듯이 한다면 어찌 불효자가 있겠으며… 남의 집을 자기 집 보듯이 한다면 어찌 도둑이 있겠으며… 남의 나라를 자기 나라 보듯이 한다면 누가 공격하겠는가? 「묵자 下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