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들기를 불고 있다. 그 모습을 놀란 눈으로 바라보는 소년. 아니, 그 소년이 놀란 것은 소녀 앞에서 푸드덕푸드덕하고 들리는 닭의 횃소리 때문이다. 이제 곧 소년과 소녀 사이에 벌어질 일을 알고 있다. 결말을 떠올리고서는, 풋-, 하고 웃음이 나온다. 이 풍경은 중학생 시절 익숙하지 않던 세로쓰기로
조동탁의 호는 芝薰(지훈)이다. 1920년 12월 3일 경북 영양군 일원면 주곡동에서 3남 1녀 중 차남으로 출생하여 ‘三不借’(삼불차) 사람, 돈, 글을 결코 남에게서 빌지 않음
의 엄한 가훈아래 인물과 문한과 재력 등이 구비된 가정에서 조부 밑에서 한자 수학을 하면서 동요를 짓고(8세), 마을소년 중심은
식민지시기 유행가 1930년대 음반에서 사용된 유행가의 갈래명칭은 가요곡, 유행가, 유행가요, 유행곡, 유행만곡, 유행소곡, 유행잡가, 유행창가이다. 이 모든 갈래용어를 쓴곳은 콜럼비아만이고, 빅타, 폴리돌, 오케, 태평음반사에서 모두 쓰인 갈래용어는 ‘유행가’였다. 송방송, 『한국근대음악연구
③ 사랑- 박녹주를 향한 모순덩어리의 사랑 ( 열정적 그리움 +환멸 )
그녀를 보기까지는 며칠 밤을 뜬 눈으로 새우며 몸부림을 치며 그리워하다간 막상 그녀를 대하고는 환멸을 느끼는가 하면 그런 가운데 환희를 찾으려고 애걸복걸하는 그였다. 그런 그녀가 없어도 좋았던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