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과학 식민지시기 유행가에 나타난 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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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인문과학 식민지시기 유행가에 나타난 고향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식민지시기 유행가 1930년대 음반에서 사용된 유행가의 갈래명칭은 가요곡, 유행가, 유행가요, 유행곡, 유행만곡, 유행소곡, 유행잡가, 유행창가이다. 이 모든 갈래용어를 쓴곳은 콜럼비아만이고, 빅타, 폴리돌, 오케, 태평음반사에서 모두 쓰인 갈래용어는 ‘유행가’였다. 송방송, 『한국근대음악연구사』, 민속원, 2003, p448 참조.
에 나타난 ‘고향’
들어가며
우리가 현재 즐겨 듣고 부르는 한국 대중가요는 근대 이후 대중매체에 의해 전달되면서 나름의 작품적 관행을 지닌 대중들의 노래를 말한다. 이러한 한국 대중가요의 특성중 몇 가지를 나열해 보면 첫째, 대중가요는 근대의 산물이다. 그런 점에서 전(前)근대 시대의 공동체를 바탕으로 하는 대중들의 노래인 민요와 달리 도시의 대중으로부터 수용층을 넓혀 나갔다. 둘째, 음반매체나 방송매체를 주 전달매체로 삼고 있으므로 구비전승되는 예술의 적층성(積層性)을 갖고 있지 않으며 창작자와 작품의 오리지널리티가 비교적 분명하다. 또한 대량복제, 대량생산됨으로써 음반산업이 이윤추구의 논리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으며, 전문적인 예술이라고 하는 점 셋째, 일제시대 이래 새로 만들어진 대중가요 나름의 작품관행을 지니고 있다. 음반에 실린 노래는 판소리, 잡가, 민요, 시조, 가곡, 대중가요 등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대중가요는 대중문화에 속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특정한 부류의 계층에 한정된 사람들의 것이 아니라 크게 보아 당대의 대다수의 서민들이 향유하는 서민문화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이영미, 『한국 대중가요사』, 시공사, 1998, pp17~18 참조.
이러한 특성들을 봤을 때 식민지 시기의 유행가의 유입과 양식이 한국근대에 어떻게 나타났는가. 그리고 이 시기에 나타난 유행가의 형태는 무엇이었으며, 유행가에 나타난 고향과 고향의식에 대해 살펴보겠다.
1. 流行歌의 유입과 양식
1920년대 후반으로 접어들어 창가의 양상에 중대한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가곡과 동요로 대표되는 순수예술과 유행가와 신민요로 상징되는 대중예술로의 분화가 그것이다.
이전까지는 가곡, 동요, 애국가, 군가, 찬송가 등의 유형을 포함해 세속 일반에서 불려지던 모든 서양식의 노래들에 대하여 통칭 ‘창가’라고 하였거니와, 음악적인 양식에 있어서도 뚜렷한 구분의 개념이 확립되어 있지 않았던 과도기였다. 김영준, 『한국 가요사 이야기』, 아름출판사, 1994, p398 참조.
우리나라의 대중가요는 유행창가가 음반이 되면서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현재까지 밝혀진 바로 유행창가가 수록된 가장 오래된 음반은 1925년 일본축음기상회에서 낸 음반이다.박채선, 이류색이 부른(창가집에 실린 제목으로는 )이 음반으로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유행창가이다. 현재 들을 수 있는 최고(最古)의 대중가요는 (1925, 작자 미상, 외국곡, 박채선이류색 노래), (1926, 작사 미상, 이바노비치 작곡, 윤심덕 노래), (1929, 김서정 작사작곡, 이정숙 노래), (1932, 왕평 작사, 전수린 작곡, 이애리수 노래)등이다. 이 작품들은 우리나라 대중가요 형성기의 모습과 그 변화의 몇 가지 지점을 읽게 해준다.
첫째, 번안가요로부터 시작한 우리 대중가요가 창작된 대중가요로 옮겨오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 이 몇 작품은 창가로부터 후에 이른바 ‘트로르’ 일제시대 대중가요의 전형적인 모습은, 지금 뽕짝 혹은 트로트라고 부르는 앵카이다. 원래 트로트는 서양의 리듬의 명칭으로, 우리나라의 이 양식과 관련을 갖고 있지 않다. 서구의 트로트와 우리나라의 트로틑 양식은 단지 외형적 리듬만 유사할 뿐이다. 즉 우리나라에서 요나누키 음계로 이루어진 이러한 유행가의 틀이 확립될 때에는, 서구의 트로트가 영향을 주었다기 보다는 일본의 앵카가 우리나라의 트로트 양식의 전범이었다는 것이다. 이영미, 『한국 대중가요사』, 시공사, 1998, p57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