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조는 개국한 지 9일만에 문무관제를 정하여 반포하였다. 이에 의하면 서반은 동반과 별도로 무산계(武散階)를 설정하여 구분하는 동시에 중앙군제는 10위로 구성 발표하였다.
건국 초기의 10위제도는 의흥친군좌우위를 제외하고는 고려 말 거의 그 기능이 마비되엇던 중앙의 2군 6위를 그대로 준용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1. 삼정의 문란
1) 전세제도의 문란
(1) 전결세항목의 증가
① 삼전세: 전세, 대동미세, 삼수미세
② 결작 및 부가세(운반비,수고비) 등
③ 세목이 토지에 집중된 이유: 농업기술의 발달(이앙법, 시비법 등의 발달) -> 토지생산력 증가
(2) 전정의 부실
① 배경: 지주전호제의 강
Ⅰ. 개요
고려시대에는 초기부터 유교를 정치이념으로 삼으면서 이에 근거한 민본사상이 강조되었다. 민본사상의 현실 정치에의 반영이라 할 수 있는 진휼정책이 중시되고 義倉이 설치된 것은 그 결과였다. 그러나 고려의 유교는 처음부터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왕과 문벌귀족 사이의 길항관계 속
Ⅰ. 高麗의 軍事組織
고려는 918년 弓裔를 몰아내고 새 왕조를 開敞하여 935년 신라의 歸附를 끝으로 완전한 통일국가를 건설하기까지 군사적으로 많은 충돌이 발생하였다. 後百濟와 끊임없는 전쟁을 하였고, 북방세력과 군사적인 충돌이 잦았던 만큼 軍事組織에 커다란 관심을 두고 있었다. 고려 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