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의 유교는 처음부터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왕과 문벌귀족 사이의 길항관계 속에서 각기 자신들의 입장을 강화하려는 수단으로 유교가 이용되었던 것이다. 왕은 유교적 소양을 갖춘 신진관료를 등용하여 이들을 세력화함으로써 왕권을 강화하고자 하였고, 이에 대해 문벌귀족은 유교의 德治를 왕
애니미즘(animism)
무생물계에도 영혼이 있다고 믿는 세계관. 물신숭배(物神崇拜)·영혼신앙(靈魂信仰) 또는 만유정령설(萬有 精靈說)이라고도 번역되는 애니미즘이라는 말은 라틴어의 아니마(영혼)에서 나온 말이다. 영국의 인류학 자 E.B.타일러가 《원시문화》(1871)에서 이 말을 처음 사용하였는데, 애
2) 천리장성 착공
거란족이 요를 건국하고 993년(성종 12)부터 1019년(현종 10)까지 총 3차에 걸쳐 고려를 침입하였다. 이때 서희, 강감찬 등의 투쟁으로 모두 물리쳤다. 그 후 고려 정부는 북방민족의 남침을 막기 위한 대비책을 강구할 수밖에 없었다. 고려 초기부터 북방민족의 침입에 대비하려 하였으
고려후기에 교육중흥을 주도하였던 왕으로서, 그의 노력으로 학교교육은 크게 활성화 되었으며, 아울러 학당교육도 번창하게 되었다. 그 후 공양왕대에 이르러 동서학당은 오부학당(東,西,中,南,北部의 학당을 말함)으로 대 개편 되었다. 이는 “공양왕 2년 2월에 서울 五部와 서북면의 府와 州에 儒學
고쳤다. 성균(成均)이란 말은 이지러진 것을 가지런히 만들고 과부족(過不足)을 고르게 한다는 뜻으로 일찍이 주나라 대학의 명칭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성균관은 공민왕 5년의 배원정책과 함께 원의 간섭으로 격이 낮춰져 개편되었던 관제를 문종 때의 것으로 복구시키는 가운데 다시 국자감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