壬申誓記石)에서 따온 명칭으로 다른 자료에서도 그와 같은 표기방식이 나타나므로 적절한 명칭이라고 할 수는 없으나 일반적으로 그렇게 부르고 있다. 서기체 표기에서의 한자들은 각각 그들 본래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으나 중국어의 어순이 아니라 우리말의 어순대로 배열되어 있다는 점에서 중국
壬申誓記石)에도 신라의 청년들이 유교경전을 공부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문자는 중국의 한문이 우리나라에 전래되어 쓰였으나 우리말과 맞지 않아 상당한 불편을 주자, 고구려에서는 일찍이 한자의 음이나 뜻을 따서 우리말을 나타내는 표현을 발견했고, 신라의 설총(薛聰)은 이를 발전시켜 이두
壬申誓記石(522) → 이두와 구별하여 서기체 표기라고도 함
壬申年六月十六日二人誓記天前誓今自三年以後忠道執持過失无誓……
(임신년 6월 16일 두 사람이 함께 맹세하여 기록한다. 하늘 앞에 맹세한다. 지금부 터 삼년 이후에 충도를 지녀 과실이 없기를 맹세한다.……)
⇒ 한국어 어순을 따랐
호국사찰(護國寺刹)인 황룡사를 재현하였다. 백색의 화강암을 재료로 삼은 석불(石佛)과 십이지상(十二支像) 등은 신라 조형미술의 우수성을 단적으로 보여 주며, 이밖에 임신서기석(壬申誓記石)․남산신성비(南山新城碑) 등의 갖가지 비석들은 신라 역사를 밝혀주는 대표적인 금석문(金石文)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