常道), 즉 영원불변하는 도라 불린다. 영원불변하는 도는 가장 추상적인 것으로 구체적인 사물을 떠나 있으므로 형상이 없다. 그래서 "보아도 보이지 않는 것을 이(夷)라 하고, 들어도 들리지 않는 것을 이름하여 희(希)라 하며, 만져도 만져지지 않는 것을 이름하여 미(微)라 한다. 이 세 가지는 생각하여
常道)를 지니고 있음을 뜻한다. 그러니까 종용유상(從容有常)이란 외부의 어떠한 상황에도 안색과 행동을 바꾸지 않고 평소의 소신에 따라 정도(正道)를 걷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소신에 따라 정도(正道)를 걷는 것이다. 자신과의 혈연관계나 학연관계의 청탁이나 얽매임과는 상관
常道)로 항존보편(恒存普遍)자라는 것이 전제되어 있다 ――에서 일체를 하나로 한다는 것이 주지이다. 도는 절대 정신과 같은 것이며, 만물은 도 앞에 균등하므로 현상의 모든 차이는 상대적인 것이며 절대적인 도의 상태가 아니다. 그러므로 도의 세계에서는 인간과 자연의 구별이 무의미하다. 이규
常道)로 삼는다는 것이다.
주희(朱熹) : 정자의 말 인용- 어느 편으로도 치우치지 않고 꼭 알맞은 것이 중(中)이며 언제나 변함없이 일정하고 바른 것이 용(庸)이다. 그러므로 중이란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올바른 도이고, 용이란 사람이 살아간ㄴ 데 지켜야만 할 일정한 원리인 것이다. 중용이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