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 론
일반적으로 사계는 조선조의 대표적인 예학자라고 일컬어지고 있다. 그러나 그는 예학 뿐만 아니라 성리학에 대하여도 많은 연구를 하였으며 이것은 그의 예학의 이론적 기초가 되고 있다. 사계는 시기적으로 退栗을 정점으로 하는 조선 전기유학을 후기유학으로 매개시키는 교량적인 역할
Ⅰ. 개요
부모로부터 고조부모까지의 4대 즉, 「문공가례(文公家禮)」의 보급에 따라서 명종(明宗朝) 이후부터는 서인(庶人)에 이르기까지 4대 봉제(奉祭)를 행사(行祀)하여 왔다. 그런데 4대봉사, 친상(親喪) 3년은 실상은 중국에서도 사대부의 예절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서민에게까지 중국예절이 5백년
家禮)》에서는 말로 약정한다는 언정(言定)이라 부른다.
- 납(納)은 받아들이기를 희망하는 것이고 채(采)는 선택한다는 뜻으로 바로 구혼(求婚)을 의미한다.
신랑 측은 매인(媒人, 중매쟁이) 넣어 신부 측에게 청혼 의사를 밝히고, 여자 측의 동의를 얻게 되면 여자 측에게 기러기 선물을 보내는 것을
家禮』를 모범으로 하여 혼인 제도를 정비하려는 노력을 시작 하였다.
기존의 연구논문들은 여성과 혼례제도의 하나인 親迎制를 묶어서 다룬 것들이 많았다. 그러다보니 혼인제에 대한 내용은 적어지게 되고, 연구서들의 내용은 여성들의 지위변화에 대한 연구로 치우치는 경향이 많았다. 《조선전
却說巴東王子響, 系齊主?第四子, 本出爲豫章王?養兒。
각설파동왕자향 계제왕색제사자 본출위예장왕억양아
각설하고 파동왕 소자향은 제왕 소색의 넷째 아들로 본래 예장왕 소억의 양자 출신이다.
?早年無子, 後來連生五男, 乃命將子響還本, 進封巴東王。
억조년무자 후래연생오남 내명장자향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