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이 지나지 않아서 나라가 무너지는 환란을 당하리라」 『栗谷全書』, 卷 34, 附錄 2, 先生於經筵啓曰 國勢之不振極矣 不出十年當有土崩之禍 願預養十萬兵 以爲緩急之備 否則一朝變起 不免驅市民而戰大事去矣
고 하여 정치 사회의 혼란을 경고하고 있다.
한편 여러 번의 사화를 겪은 사림
사계예학의 주요 학설
⑴ 정통설正統說
사계의 예학사상에 있어서 가장 강조되는 것이 바로 정통사상(正統思想)이다. 사계는 統 의 수립을 무엇보다 중시하였다. 그것은 종법질서의 확립이 곧 국가의 기강과 사회질서를 바로 잡을 수 있는 요체라는 그의 확고한 禮 인식의 소산이었다.
사계
조선 성리학을 대성한 사람은 이황과 이이였다.
이이는 주기론의 입장에서 관념적 도덕 세계를 중요시하는 동시에, 경험적 현실 세계를 존중하는 새로운 철학 체계를 수립하였다. 그는 주자와 이황의 이기이원론에 만족하지 않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일원론적인 이기 이원론을 주장하였다. 그는 현실
조선조가 성립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한편 정몽주의 학풍을 이은 길재는 의리학(義理學)의 학통을 세웠고, 그 학통은 김숙자(金叔滋)김종직(金宗直)김굉필(金宏弼) 그리고 조광조(趙光祖)로 이어지면서 기묘사화을사사화 등의 희생을 겪었으나 도학의 의리정신은 면면히 계승되었다. 그러나 성리학이
율곡 사계의 학통을 이어받아 율곡의 성리학을 주자학의 정통을 이은 것으로 만든 사람은 우암 송시열이다. 우암은 퇴계와 우복의 학설을 공격하고 율곡의 설이 옳음을 논증하는데 평생을 바쳐 노력했는데 이는 당시에 예송문제로 격화된 당쟁과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 우암이 48세때 유직柳稷등이 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