疏)』(이하, 『疏』)이 된다는 점에서 그렇다고 볼 수 있으며, 원효의 『起信論』 관련 저술은 義天錄에 따르면, 『大乘起信論疏』 2권, 『起信論別記』 1권, 『大乘起信論宗要』 1권, 『大乘起信論大記』 1권 등 5종이 당시 유통되고 있었다.(南東信, 元曉의 起信論觀과 一心思想, 『韓國思想史學』22, pp
疏)는 중국의 법식에 의거하였다.”고 한 데서 유학이 백제에 미친 영향을 알 수 있다.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지음, 『강좌한국철학』 예문서원, 1995년 p.117
중국 한 무제 때 성립된 오경 박사 제도가 그대로 백제에 전해졌는데, 백제에서는 이런 제도를 통해 유학을 나름대로 체계화했음을 알 수 있다. 한
같은 도덕적 의미로 설명하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그의 관점에 의하면 ‘충이란 태어날 때부터 갖추어진 진실한 마음을 다함’이라는 의미와 깊게 관련된다.
『주례소(周禮疏)』에는 충을 중심(中心)으로 여겼는데 朱熹, 『論語集註』,「里仁」, “朱子曰中心爲忠……見周禮疏如比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