致良知)는 행(行)이다. 우리가 반드시 행위에 양지를 발현해야(致良知) 비로소 양지의 지는 완성된다.
이것이 양명의 지행합일설(知行의 핵심인데, 지행합일은 본디 단순한 학술적 개념이라기보다는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있는 개념이다. 즉, 지(知)와 행(行)은 본래 한 가지이므로 항시 일관된 것이고,
致良知)는 행(行)이다. 우리가 반드시 행위에 양지를 발현해야(致良知) 비로소 양지의 지는 완성된다. 이것이 양명의 지행합일설(知行合一說)의 핵심.
“지(知)는 행(行)의 시초이고 행은 지의 완성이다. 지의 바깥에 행이 있는 것이 아니고 행의 바깥에 지가 있는 것도 아니다.”
“지와 행은 분명히 서
致良知)는 행(行)이다. 우리가 반드시 행위에 양지를 발현해야(致良知) 비로소 양지의 지는 완성된다. 이것이 양명의 지행합일설(知行의 핵심이다. 오직 지(知)만 말하더라도 이미 행(行)이 내재되어 있고, 오직 행만 말하더라도 이미 지가 내재되어 있다.
요컨대, 지행합일의 종지는 ‘지행의 본체상합
致良知) 세 글자를 제시하여 본체를 바로 지적했다. 흔히 왕수인의 교(敎)가 삼변(三變)했다고 하는데, 이는 지행합일설 - 정좌 - 치양지설로의 변화를 말한다. 지행의 본체는 심이며, 더욱 구체적으로는 양지(良知)이기 때문에 지식과 실천이 심에 의하여 합일된다고 했지만 실천과 지식의 합일을 위하
致良知) 세 글자를 제시하여 본체를 바로 지적했다. 흔히 왕수인의 교(敎)가 삼변(三變)했다고 하는데, 이는 지행합일설 - 정좌 - 치양지설로의 변화를 말한다. 지행의 본체는 심이며, 더욱 구체적으로는 양지(良知)이기 때문에 지식과 실천이 심에 의하여 합일된다고 했지만 실천과 지식의 합일을 위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