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철학] 양명학의 성립과 전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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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동양철학] 양명학의 성립과 전개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Ⅰ.서론

Ⅱ.王陽明의 생애

Ⅲ. 양명학의 성립과 전개

Ⅳ.결론

본문내용
Ⅰ.서론

주자학은 그 체계가 완비되어 있어 원나라 때부터 수양과 실천을 위주로 할 뿐 이론적인 독창성이 없었다. 그러나 명나라 초기 진헌장(陳獻章)은 독서에 의한 자기수련방법에 대하여 의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하여 독서를 버리고 정좌(靜坐)를 통하여 사색한 끝에 '곳을 따라서 천리를 체인(體認)하는 방법'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의 문인 임광(林光)은 진헌장에 대해서 "선생께서 교육할 시초에 반드시 정좌케 하여 그 착한 실마리를 기르게 했다. 일찍이 말하기를, '사람이 학문하는 까닭은 도리를 듣고자 하는 것이다. 도(道)를 서적에서 찾으나 얻지 못하니 도리를 내 마음에서 찾는 것이 옳겠다'라고 했다." 이로써 진헌장의 심학(心學)은 양명학의 선구가 되었다.
왕수인은 저장 성[浙江省] 위야오 현[餘姚縣]에서 태어났으며, 젊어서는 많은 정신적 편력이 있었다. 그는 용장(龍場)으로 귀양가서 "성인의 도는 나의 본성만으로 스스로 넉넉하다. 따라서 밖으로 찾을 것이 아니다"라고 자각하게 되었다. 또 주자의 즉물궁리(卽物窮理)는 심(心)과 이(理)의 간격을 좁힐 수가 없으므로 격물(格物)의 격(格)을 주자처럼 '이르다'[至]로 해석하지 않고, 바로잡는다[正]로 했으며, 물(物)을 주자처럼 사물의 이라 하지 않고, 심의(心意)가 있는 인간사(人間事)라고 해석했다. 즉 심의 발동의 부정(不正)을 바루는 것[正]을 격물이라고 했으며, 치지(致知)의 지는 지식이 아니라 양지(良知)이니 양지를 수렴하여 확충하고 실현하는 것을 치지라고 했다. 그리하여 심즉리(心卽理)에 귀착하게 되었다. 뒷날 왕수인이 성인의 학문은 심학(心學)이라고 했듯이, 심학이 체계화되는 기초가 여기서 마련되었다.
한편 구이양[貴陽]에 있을 때, 처음으로 지행합일설(知行合一說)을 주장하고, 저양(檍陽) 이후 정좌를 가르쳤으며, 강우(江右) 이래로 비로소 치양지(致良知) 세 글자를 제시하여 본체를 바로 지적했다. 흔히 왕수인의 교(敎)가 삼변(三變)했다고 하는데, 이는 지행합일설 - 정좌 - 치양지설로의 변화를 말한다. 지행의 본체는 심이며, 더욱 구체적으로는 양지(良知)이기 때문에 지식과 실천이 심에 의하여 합일된다고 했지만 실천과 지식의 합일을 위하여 정좌공부를 주장했다. 이로 인해 한때는 배우는 자가 깨우치는 듯했으나 오래됨에 따라 점차 고요한 것을 즐기고 움직이는 것을 싫어하는 폐단이 발생해 치양지공부(致良知工夫)로서 그 폐단을 타파했다. 이처럼 양명학은 치양지설에서 체계가 완성되었다.

Ⅱ.王陽明의 생애
참고문헌
, 까치 ,시마다 겐지 지음
, 대한교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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