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의 합일을 위하여 정좌공부를 주장했다. 이로 인해 한때는 배우는 자가 깨우치는 듯했으나 오래됨에 따라 점차 고요한 것을 즐기고 움직이는 것을 싫어하는 폐단이 발생해 치양지공부(致良知工夫)로서 그 폐단을 타파했다. 이처럼 양명학은 치양지설에서 체계가 완성되었다.
Ⅱ.王陽明의 생애
마음이다. 마음이 없으면 이도 없다.
마음, 즉 양지를 앎이라고 생각하면 치양지는 실천으로 앎과 행위는 분리될 수 없다. 앎은 행위의 시작, 행위는 앎의 완성이기에 양지도 실천을 통해 완성된다. 알면 반드시 행해야 하고 알면서도 행하지 못하는 것은 사욕이 가리기 때문이다(지행합일(知行合一))
양명의 양지는 공부를 오직 성찰과 확충에 두어 늘 고요함을 즐기고 움직임을 싫어함을 경계하였다.” 고 하여 선학과 양명학이 다름을 역설하고“선유는 궁리로서 격물치지하는 일이라 하여 지에 전속시켰지만 오직 왕양명만이 지행이 겸하는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고하여 단지 격물과 궁리
마음은 주체임으로 객체가 될 수 없는 것인데 사물(외)를 통해서 마음(내)가 채워진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고 받아들일 수도 없는 것이었다. 이러한 양명의 주자학에 대한 이해가 올바른 것인지에 대한 판단은 여기서는 논외로 하겠다. 양명의 사상, 양명학의 출발점이 위와 같은 주자학의 문제점
양명학에 조금 더 관심이 간다. 내가 주자학보다 양명학에 더 관심을 갖는 이유는 주자학은 이론과 원리에 과도한 집착을 보여 다소 어렵게 다가 오지만, 양명학은 이에 비해 심을 강조하고 실천을 중요하게 여겨 그 사상에 매력이 있다 느껴진다. 그리고 일화를 통해 살펴본 왕양명은 도학자로서는 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