賜姓) 받은 허기(許奇)의 10세손이다. 인천 이씨의 시조 이허겸이 식읍 1,500호를 하사받은 곳이 현재의 인천이며, 이후 후손들이 인천에 세거하면 관향(貫鄕)으로 삼았다. 인천 이씨를 권문세가로 발전시킨 것은 이허겸의 손자인 이자연(李子淵)에 의해서이며, 이자연의 두 딸이 고려 문종에게 출가하여
정난(靖難)에서의 공을 인정받아 당시로서는 환관의 최고 지휘의 관직이며 내관감(內官監)이라는 관청의 장관인 태감(太監)으로 발탁되게 된다. 뿐만 아니라 1404년(영락 2년) 정월 1일의 사성(賜姓)의식에서 영락제로부터 ‘정(鄭)’성을 받아 이때부터 비로서 ‘정화(鄭和)’라 일컬어지게 되었다.
賜姓)하고 이름을, 용지(龍池)에서 동해신룡의 정기를 이어 받았다하여"계룡(繼龍)"이라 지어 주었다 한다. 그로부터 장성하여 신라 진평왕의 사위(駙馬)가 되고 창성 부원군 (昌城府院君)에 봉(封)하게되니 이분이 곧 우리의 시조이시다.
우리 시조가 탄생과정부터 기이할 뿐 아니라 임금의 사위가 될만
(卿相)은 틀림없을 것이다" 하는 꿈속에서 들은 말을 신라 진평왕(眞平王)께서
이광옥으로 부터 전해 들으시고 왕(王)이 기이하게 여기고 아이를 직접 접견하고 보니 과연 풍모가 특이하고
겨드랑이 밑에 "曺" 자와 같은 무늬가 새겨져 있음을 보고 성을 "曺"라 사성(賜姓)하고 이름을, 용지(龍池)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