院相)이라는 변칙적 기구의 설치에서 가장 상징적으로 드러난다. 세조는 대간의 언론을 강력하게 제약했기 때문에 성종 즉위 무렵 대신(의정부와 육조)에 대항할 만한 비판세력의 존재는 미미했다.
이렇게 세조의 집권을 계기로 형성된 훈구파는 막대한 권력을 독차지하면서 많은 문제들을 야기했다.
장악하면서 중요 관직을 차지하였고, 특히 원상제(院相制)를 통해서 권력을 독점적으로 운영하였다. 또한 좌리공신(左理公臣)의 책봉을 통해서 자신들의 입지를 더욱 강화하였다. 이렇듯 훈구세력은 정치 주도권을 장악하고 왕실과 통혼하면서 훈척세력을 형성하여 결국 권귀화(權貴化)하였다.
“어느 날 세종대왕은 밤늦게까지 집현전에서 불빛이 새어 나오는 것을 보았다. 내관에게 알아보라고 하자 신숙주라는 학자가 책을 보고 있었다. 새벽닭이 울자 신숙주 학사가 잠자리에 들었다. 세종대왕은 내관에게 자신의 옷을 벗어주며 신 학사에게 덮어 주고 오라고 하였다. 잠에서 깨어난 신숙주
Ⅰ. 개요
중앙집권적 관료체제에서는 모든 권력이 형식적으로는 국왕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국왕은 모든 사람의 생사여탈권(生死與奪權)을 가지고 있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지식인 관료들의 분열을 막고 국가의 강한 응집력을 확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원칙적으로는 국왕에 대한 반역
사림세력의 등장
1. 사림세력의 성장기반
2. 사림세력의 진출과 사화
3. 사림세력 구성의 특징
3. 사림세력 구성의 특징
1) 학파의 형성
治者의 學으로써의 儒學은 이미 그 학문 영역 안에 정치적 요소를 폭넓게 포함하고 있었다. 따라서 학문상으로만 맺어진 인간관계라 하더라도 스승과 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