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구파는 성균관과 같은 관학에서 사장학(시와 문장) 중심의 공부를 한 반면, 사림파는 서원과 같은 사학에서 경학(성리철학)에 몰두하였다. 훈구파가 대지주인 반면, 사림파는 대부분 중소 지주적인 경제기반을 가지고 있었다. 훈구파가 중앙 집권적인 정치체제를 추구한 반면, 사림파는 향약의 실시
훈구파는 막대한 권력을 독차지하면서 많은 문제들을 야기했다.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양민을 노비로 삼거나 양민의 토지를 빼앗는 등으로 수많은 농민들이 전호(佃戶:소작농)로 전락했으며 훈구파들의 대토지 소유로 중소지주였던 사림파의 지방 기반을 크게 위협했다. 즉 사화(士禍)는 훈구파와 사
사화에 의해 사림 대부분이 제거됨
ㄹ. 중종이 훈구파 견제를 위하여 다시 등용-명종이 즉위하면서 외척끼리의 권력다툼에 휩쓸려 정계에서 밀려남.
ㅁ. 이후 완전히 몰락하지 않고 서원, 향약, 유향소를 바탕으로 성장
- 서원 : 제사, 학문을 연구, 지방으로 확대하면서 당파를 결속
- 향약 : 계,
애니미즘(animism)
무생물계에도 영혼이 있다고 믿는 세계관. 물신숭배(物神崇拜)·영혼신앙(靈魂信仰) 또는 만유정령설(萬有 精靈說)이라고도 번역되는 애니미즘이라는 말은 라틴어의 아니마(영혼)에서 나온 말이다. 영국의 인류학 자 E.B.타일러가 《원시문화》(1871)에서 이 말을 처음 사용하였는데, 애
교화라는 명분을 내걸고 이들을 성리학적 관념 속으로 끌어들였다.
2. 사림파와 훈구파
같은 사족으로서 고려의 불교적 향촌사회를 성리학적 향촌사회로 전환시키는 데 공감, 하지만 운영방식에는 이견을 가지고 있었다.
1) 훈구파
중앙집중적인 방법
2) 사림파
재지사족을 중심으로 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