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을 선교본거지로 한 것처럼 서울에는 여러 교파의 본부가 주재하고 있어 경쟁을 피하기 위함이었다. 중국 연회로부터의 완전한 분립은 1907년에 시행되었다. 리드 목사가 최초의 남 감리교 선교사로 한국에서 일하는 동안 윤치호장로가 시종여일하게 협력하였음은 두말 할 것 없다. 그리하여
교회는 보다 가톨릭적인 방향으로 가기를 원하는 요구와 보다 프로테스탄트적인 방향으로 가기를 원하는 요구에 직면했고 때로는 균형을 깨뜨리는 지나친 요구에 대해 추방도 불사했다. 감리교는 국교회에 보다 프로테스탄트적이기를 요구하다가 추방당한 신앙인들이 만든 교회다. 감리교의 명칭은
감리교회가 진정한 한국 교회가 되도록 하는 데 있어서 성경, 전통, 체험, 이성과 더불어 한국의 문화를 중시하는 신학의 수립이 절실하게 요청된다. 이는 진정으로 복음적이며 한국적인 찬송가를 짓는 과제를 비롯하여 한국 감리교회의 예배, 신조, 영성, 선교와 같은 구체적인 신앙생활의 전 영역에서
신학을 공유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중복음에 대한 강조점과 해석의 다양성을 전제하더라도 이들은 모두 중생, 성결, 신유, 재림을 주요 교리로 삼고 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18세기 영국의 존 웨슬리를 중심으로 일어난 메소디스트 운동은 미국에서도 크게 영향을 미쳐 미국 감리교회를 형성하
신학의 중심사상은 구원관.송흥국,웨슬리 신학,(서울,대한기독교서회,1980)p.45
이며, 그 구원관의 핵심은 성화(San-
ctification)이며, 미래적이기 보다 현재적임을 강조한다..김홍기,존 웨슬리 신학의 재발견,(서울,대한기독교서회,1993),p.86
이러한 대 전제
아래서 지금의 한국 감리교회를 살펴보면 너무 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