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오개혁은 청일전쟁으로 동아시아에 있어서 중국 중심의 세계가 최종적으로 붕괴되는 가운데 사회 전반에 걸쳐 진행되었던 광범한 제도 변혁이었다. 재정제도의 변화에 국한하더라도 대동법 이후 그 형식을 유지하고 있던 공납제도가 최종적으로 폐지되었으며, 궁내부가 창설되고 왕실재산의 관리
의 비상 개혁추진 기구였다. 여기에는 대원군 계열, 동도서기(東道西器) 계열, 친일개화 계열 등 다양한 정파가 참여하였다. 이 중 어윤중(魚允中)으로 대표되는 동도서기 계열이 1894년 11월 제2차 김홍집 내각(이른바 김홍집-박영효 연립내각)이 출범하기 전까지 주도권을 잡고 개혁을 추진하였다. 그것
의미로는 이노우에 주한일본공사가 이후 2차 개혁, 이른바 을미년에 개혁이 진행되었다는 의미에서 을미개혁까지, 나아가 명성왕후 시해사건인 을미사변을 거쳐 1895년 12월 28일 아관파천까지의 시기를 포함한다. 한반도 근대화의 중요한 기점의 하나로 말해지기도 하는 갑오개혁의 직접적 배경은, 안
개혁을 단행하였다. 지방의 면 단위로 대표자 일인을 선거로 뽑아 읍 단위의 향회를 조직하고 정부의 명령사항을 전달하고 지방행정을 공동 결정하는 제도를 마련한 것이다. 박영재 외『한국사 : 청일전쟁과 갑오개혁』(서울 ; 국사편찬위원회, 2000), p.192.
다섯째, 근대적 사법기관을 설치하였다.
의숙, 휘문의숙, 숙명학교, 진명학교, 보성학교가 설립
- 모든 교과용 도서를 국문이나 국한문혼용문으로 함
- 각종 시험은 물론, 모든 법령과 칙령도 국한문으로 제도화
개신교는 1885년 언더우드(H.G.Underwood)와 아펜젤러(H.G.Appenzeller), 스크랜턴(M.F.Scranton) 등에 의해, 의료기관, 교육기관이 설립
성경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