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가 소위 근본주의 대 근대주의 논쟁에 휘말려있던 시기로, 1910년에 채택된 “근본교리 5개조”가 1916년과 1923년 두 차례에 거쳐 확인 절차를 거치고, 미합중국 장로교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거나 목회를 희망하는 타교단의 목사에게 최소한의 신앙고백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1812년 신학교의 설립
개혁신앙을 위한 교회는 총 5편의 소논문 형식으로 되어 있다.
조직신학자 박형룡박사의 신학과 사상
박형룡 박사의 신학은 구 프린스톤 신학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일제 하 식민지 통치하에서 한민족의 교육과 개화에 힘썼던 평양 숭실 전문학교에서 시작하여 중국의 금릉대학을 졸업하고
교회는 오늘날 통합이라는 이념 하에 나타나는 세계교회협의회(WCC)의 운동에 대하여 무엇이 신학적으로 옳고 그른 것인지에 대한 평가를 내려할 시점에 놓여 있다. 그리고 그것을 여과 없이 받아들이고 있는 현대교회의 모습 속에서 성경이 말하고 있는 개혁주의적 교회연합과 통일성의 진정한 의미와
개혁의 연장선상에서 “복음에 속한 사람들”이란 의미로 사용된 것으로 여긴다.
복음주의는 중세교회의 형식적인 신앙생활에서 개인적인 구원의 체험과 성서의 영적인 중요성을 강조하며 성서적인 신앙과 생활로 되돌아가려는 카톨릭 내에서의 시도와 관계가 있다.
1530년대에는 프로테스탄트라
Ⅰ. 서 론
교회에 대한 메이천의 시각은 일부의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재세례파나 독립 교회파의 것과는 사뭇 다르다. 그분의 관점은 신실한 개혁주의와 장로교 신학자의 것이라 할 수 있다. 교회론을 포함한 그분의 신학적인 시각은 주로 프린스톤 신학의 직, 간접적인 영향을 받아 형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