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9년에 이르러 걷잡을 수 없이 타오른다.
의병장들은 의병을 일으킬 수 밖에 없는 당위성과 항쟁의 근본 취지를 밝힌 격문이나 포고문을 내고 전쟁중에도 항일 활동에 관한 기록과 자신의 비통한 심경을 표현한 일기나 한시 또는 가사를 남긴다. 또한 의병활동을 칭송하는 민요, 창가도 번성한다.
개화기 가사는 전통가사처럼 정형을 엄격히 고수하지 않고 다소 자유스러움을 지향했다. 길이에 제한이 없다는 점, 율격에서 4.4조에 국한되지 않고 3.4조 혹은 4.3조의 변이율도 구사한다는 점, 합가(合歌)나 후렴구 등을 삽입하고 연 구분도 있다는 점, 그 외 민요나 시조 등과 상호 침투해 형태상 및 율
년 만주로 망명하여 수천편의 노래를 지었다고 하는데 현재 87편 800여수의 노래가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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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시가(시가문학)와 개화기시가
조선 후기 우리의 고전 문학은 시조, 가사, 한시, 소설과 같은 기록 문학과 설화나 민요, 탈춤과 같은 구비 문학이 대중적인 인기를 얻으
년》 창간호, 1908.11
① 정형률을 벗어나고자 시도하고 있는 자취가 보이지만 형태상 아직도 이전 시가의 고정 형식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채 자유로움을 추구
② 구어체의 채용
-대담한 의성어의 감각적인 도입 -과격한 점층적 표현
-직유적 과장법 사용 -경박한 설의법 -극적 화법을 사용
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