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층시가문학을 새로이 정비하고자 하면서 새로운 문학양식(文學樣式)을 채택하게 되었다.
이런 이유로 고려후기는 신라시대상층 시가문학을 대표하던 향가(鄕歌)가 사라진 시대가 되었고, 이렇게 사라진 향가의 빈자리를 대처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문학양식이 경기체가, 시조, 가사였다. 경기체가,
시대의 청산으로 조성된 상층시가문학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신흥사대부들이 나서서 내놓은 것이 경기체가, 시조, 가사였다. 박일 , 《한국시가문학사》, 아시아문화사, 2000. p.102.
이 중 경기체가는 고려 고종 때의 <한림별곡>을 효시로 조선조 말인 1860년 민규의 <충효가>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명
사대부가 나서서 상층의 시가문학을 새롭게 일으키고자 한 데서 중세 전기문학과는 구별되는 중세 후기문학의 두드러진 특징이 구현되었다. 그래서 내놓은 것이 ‘소악부, 경기체가, 시조, 가사’ 등이다.
본고에서는 고려후기에 활발히 향유된 속악과 신흥사대부가 새로이 내놓은 ‘소악부, 시조,
한국문학사에서 ‘속요’라는 명칭은 경기체가와 더불어 고려시대 가요의 주요한 몫을 차지하는 특정한 장르 명칭으로 통용된다. 본조는 ‘속요’의 속된 면모 이외에 가지는 시가사적 의의를 밝히기 위해 속요의 명칭, 담당층, 작품 등을 살펴보고 아울러 속요와 관련이 깊은 소악부에 대해서도 알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