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며
『삼국유사』의 〈경덕왕 충담사 표훈대덕〉의 설화에는 2가지의 이야기 고리가 연결되어 있다. 백성을 위한 지도자로서의 제왕의 모습과 후사를 잇기 위한 한 인간으로서의 제왕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삼국사기』에는 특별히 충담사와 표훈대덕과의 연결된 기록을 찾을 수 없어 여러
경덕왕과 충담사와 표훈대덕 - 충담사의 향가들
경덕왕이 나라를 다스리기 24년, 5악과 3산의 신들이 가끔 궁전의 뜰에 현신하여 모이곤 했다. 어느 3월 삼짇날, 왕은 귀정문 위에 나와 좌우의 신하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누가 길에서 영복승 한 분을 데려오겠는가?"
그때 마침 위의가 깨끗한 한 대
경덕왕 대까지 벼슬을 하다가, 괘관을 하고 남악에 들어가 단속사를 창건한다는 내용이다. 뒷부분에는 일연이 법당 뒷벽에 걸린 화상, 마을 이름의 변천 등의 단속사 관련 기록을 덧붙여놓았다. 단락 ③에서는 일련의 서사적 전개와는 별도로 이 서사내용에 대한 찬자인 일연의 견해가 제시되어 있다.
경덕왕대는 10구체 향가가 발달한 시대였다. 이런 시대에 월명사는 「제망매가」를 가창함으로써 그 시대 시가문학의 한복판에 우뚝 서게되었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제망매가」는 내용과 수사 모두에 걸쳐서 향가를 대표할 수 있는 서정시이다. 서정시다운 서정시가 충담사와 더불어 그에게
(1)통일신라 전기 태종무열왕 ~ 경덕왕, 신라 중대
의 불교
1)정치이념으로서의 불교의 역할 축소
불교계에 나타난 가장 중요한 변화는 불교의 정치이념으로서의 역할이 축소되었고, 그 대신에 개인의 삶의 의미를 추구하는 측면이 강화되었다는 점이다. 삼국시대의 불교는 왕실과 귀족을 중심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