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해 소개할 수 있는 유적지를 하나쯤은 만들어두고 싶다는 마음으로 답사지로 정하게 되었다. 물론 궁궐로 정할 경우에 궁궐은 건물위주로 되어있는 곳이고 당대의 일상적인 서민들의 삶과는 거리가 먼 것들이라서 자칫 감상이 왜곡되거나 한쪽에 치우칠 수 있다는 생각에 우려되는 마음도 있었다.
광화문은 경복궁으로 들어가는 첫 번째 정문이라고 볼 수 있다. 경복궁은 정문인 광화문에서 시작하여 직선으로 근정문- 근정전- 사정전- 강령전- 교태전으로 이어진다. 게다가 이런 건물의 일직선 축은 더 멀리로는 북한산과 관악산으로 잇는 선에 맞춘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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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에 갔을 때, 우리는 수많은 외국인을 보았다. 하루에도 몇 십명 아니 몇 백명씩 많은 외국인들이 온다. 경복궁을 복원하는 것에 몇백억이 든다고, 광화문 그 몇미터를 옮기는데 그렇게 쓸데없는데 돈을 쓰는 것이 한심하다고 하지만, 생각해보자. 우리가 정말로 정성을 들여서 정확한 고증을 거쳐
경복궁의 집현전에서 세종 25년(1443)에 한글이 창제되었으며 자격루와 측우기 등의 과학기구가 이 궁궐 안에 있었다. 경복궁에는 조선의 건축을 대표하는 국보 건물인 근정전(국보223호)과 경회루(국보224호), 보물로 지정된 근정문 및 행각(보물812호), 자경전(보물809호), 교태전의 후원인 아미산의 굴뚝(
해태 두 마리였다. 눈은 부리부리한 모습으로 부릅뜨고 있고 꼬불꼬불한 털들은 물이 돌아 들어가는 소용돌이 형식으로 감각적으로 묘사됐고 꼬리는 해학적였다. 섬세한 수법으로 지어져 웅대한 구조이고 전체적인 균형과 조화가 절묘했다. 장려한 외관을 지녔고 윗 부분은 목조양식이었다. 정면 축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