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일제(일제강점기, 식민지시대)의 계엄령
1. 일제의 '계엄령'은 천황을 전제로 한 것이었다
1882년 8월 5일에 제정된 일제의 '계엄령'은 천황의 존재를 전제로 한 것이었다. 계엄의 근거는 “천황은 계엄을 선고한다”라는 내용의 대일본제국헌법 제14조였으며, 계엄의 요건의 존부는 “계엄을 선고
Ⅰ. 1948년의 항쟁
제주도 민중은 미군정과의 대립상황이 언제 폭발할지 모른다는 긴장감 속에 1948년 새해를 맞이했다. 그 긴장은 1월 22일 미 CIC와 군정경찰이 조천면에서 열리고 있던 남로당 회합장을 덮쳐 모두 106명을 검거하면서 깨지고 말았다. 이 당시의 상황이 『G-2보고서(48.2.6)』에는 “1월 22일
Ⅰ. 서론
임정이나 이승만 모두 자신의 조직기반과 활동력을 과장하여 미국 정부에 접근하였는데, 이러한 방식은 오히려 이들의 정치적 의도만 미국 측에 노출시키는 결과를 빚었다. 또 자신의 활동을 통하여 입장을 관철시킬 만한 힘이 없었기 때문에 이들은 전후 한반도를 둘러싼 미․중간, 미
Ⅰ. 서론
1948년 4월 3일 새벽 1시 500명 안팎의 소위 무장자위대가 11개지서와 서청, 대청 등 우익단체의 요인 집을 습격하면서 무장봉기의 신호탄이 올랐다. “탄압이면 항쟁이다”라는 슬로건을 내건 무장대는 단선.단정 저지를 통한 통일국가 수립, 그리고 경찰과 서청의 추방을 요구 조건으로 내걸
Ⅰ. 서론
당초 제민일보 4.3취재반은 미군의 역할에 대해 주목하지 않았다. 1980년대 후반 활발히 벌어진 미군정 연구 성과는 현대사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대중에게 심어주었고 취재반의 시야를 넓혀 주었다.
그러나 4.3과 관련해서는 딱히 손에 잡히는 게 없었다. 증언자들에게 물어보면 '그 때 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