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의를 얻었고, 송나라의 연호 대신 요의 연호를 사용하기로 하였다. 이에 고려는 흥화진·통주·구주·곽주·용주·철주 등을 획득하여 압록강 유역까지 진출하게 되었다. 결국 요에 제 1차 침략의 목적은 고려와 송나라의 관계를 단절시키고 요와 교류하게 하려는 목적에서 나온 것이었다.
* 2차 침입
고려의 대외관계와 압록강 하구의 중요성
936년 고려가 삼국을 통일하고 960년 중국에서는 송이 5대10국의 혼란기를 수습하고 통일을 이루었다. 중국을 통일한 송은 당시 북방을 통일한 거란과의 대립이 불가피했다. 그러나 송은 거란과의 고량하 전투에서 패전하여 거란이 점유하고 있던 연운 16주
침입을 받았고, 국가 재정도 궁핍해졌다. 이를 극복하고자 한 왕안석의 신법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12세기 초 여진족의 침입을 받아 북중국을 빼앗기고 강남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양쯔 강 이남 지역의 개발이 촉진되어 강남이 경제와 문화의 새로운 중심지로 발달하였다. 이 시기에 주희가
주고 농민층이 귀족 세력에 예속되는 것을 막아 왕권을 강화하는 것이었다. 또한 계루부, 연노부, 소노부, 절노부 등 부명이 중부/동부/서부/남부/북부 등의 방위명으로 전환되는 등 중앙 집권화를 위해 정치 체제가 더욱 정교해젔다.(부족 5부 체제의 5방위 개편) 184년 한나라 요동태수의 침입을 막아 싸
고려와 거란의 전쟁은 993년, 1010년, 1018~19년에 고려와 거란의 요나라 사이에서 벌어진 전쟁이다. 고려는 요나라와 지리적으로 인접해 있었으며 정치, 경제, 문화 등 여러 분야에서 교류가 빈번하게 일어났다. 고려 건국 당시, 지금의 몽골과 만주지방에는 거란족과 여진족이 유목생활을 하고 있으며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