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는 건국 초기부터 고구려의 옛 땅을 되찾기 위한 북진정책을 폈다. 그래서 발해를 무너뜨린 거란과는 국교를 트지 않았으며 발해 유민이 고려로 망명을 요청해 오자 재빨리 받아 들였다. 고려는 또한 고구려의 서울이던 평양을 서경이라 하여 북방 개척의 전진 기지로 삼아, 태조 말년에는 북쪽 국
태조가 되었다. 철원의 포정전(布政殿)에서 즉위하여 국호를 고려(高麗), 연호를 천수(天授)라고 하였다. 하지만 그에게는 많은 난관이 가로놓여 있었다. 먼저, 안으로는 왕권에 도전하는 적대세력에 대처하여야만 하였다. 환선길(桓宣吉), 이흔암(伊昕巖) - 한편으로는 이 이흔암의 모반사건은 조작되었
신분과 업적
균여는 신라사람으로 망국을 경험하지 않았음으로, 신흥하는 나라 고려에서 자기의 사명을 찾는데 아무런 장애도 없었다. 출가해서 승려가 된 다음에는 화엄종을 택해 고려 전기의 사상적인 통일과 국가 체제 장비에 적극 기여하는 방향으로 나갔다. 업적은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고려를 건국한 것은 918년이다. 공양왕(恭讓王)까지 34대 475년간 존속했다. 신라 말에 송악(松嶽:開城)의 토호(土豪)였던 왕건은 태봉(泰封)의 왕인 궁예(弓裔)의 부하로 있다가 918년 궁예를 추방하고 즉위하여 국호를 고려, 연호를 천수(天授)라고 하여 고려를 건국하였다. 고려태조 왕건은 신숭겸(申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