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태에서 그가 1953년 북한에서 사망할 때까지 이념과는 하등 관련이 없는 그의 작품들이 어둠 속에 가려져 있던 것은 우리 시문학의 발전을 위해서도 불행한 일이었다.
그러면 본론으로 들어가서 정지용 시인을 중심으로 고전의 가치와 잡지 문장파근대예술가들의 지향점에 대해 논하도록 하겠다.
작가들인 구인회 작가들이 개발한 장시, 심경소설, 알레고리의 방법, 의식의 흐름 수법 등이 그것인데, 이는 카프 작가들이 창출한 단편 서사시, 리얼리즘 소설 형식과 대응된다. 이러한 모더니즘 작가들이 시도한 문학 형식은 분명히 한국 근대문학의 층을 두텁고 다양하게 하는 데 기여하였다.
문학의 이념 과잉에 따른 편향성에 대한 반성과 예술로서의 시의 본질에 대한 자각과 혁신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1930년대 한국 시단을 주도한 시인들 가운데서도 정지용은 당시의 획기적인 전환을 실질적으로 주도해 나간 시인으로 꼽을 수 있다. 정지용이 거둔 시적 성과는 30년대 한국 시단이 거둔 성
위하여 광분하던 때, 꺼져가는 한국적 문화를 지키려고 매달렸기 때문이다. 당시 한국어교육을 봉쇄하고 창씨개명을 강요할 뿐만 아니라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마저도 폐간된 현실 속에서 문장 편집진들은 최후의 순간까지 한글로 잡지간행을 시도했었다는 점은 대단한 용기라고 아니할 수 없다.
지향성을 드러내고 있었다 (편집의 경우, 소설은 이태준, 시는 정지용, 시조와 고전 발굴소개는 이병기. 장정 및 표지화는 김용준과 길진섭). 일제강점기에 잊혀져 가는 고전을 발굴하고 계승하기 위해 노력했던문장파예술가들을 비롯한 사람들의 노력이 없었다면, 우리는 지금 알고 있는 많은 고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