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녀는 중세시대의 또 다른 어두운 역사의 흔적이다. 위안부 사냥꾼들에게 식민지시기의 여인들이 잡혀갔다면, 고려?조선
시대의 여인들도 공녀사냥꾼들의 마수에 걸려들어야만 했다. 그리하여 수천명의 어리고 아리따운 처녀들이 원?명?청나라 땅으로 끌려갔다. 낯설고 물설은 타국으로 끌려가지 않
고전소설은 딱딱하고 읽기 불편하고 요즘 세대와 맞지 않는다는 편견을 갖기 쉽다. 소공녀도 마찬가지로 인식하기 쉬운 책이다. 제목부터 고전 같다라는 이미지가 풍기며 시중에 보이는 소공녀의 책 겉 표지는 다른 어느 최신의 인기소설과 다르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었다.
그러나 나의 생각이 틀렸다
공녀요구는 이처럼 결혼이라는 명목으로 시작되었는데, 특히 1275년 원 세조의 통혼을 요구하는 조서를 통해 공녀 요구가 본격화 되었다. 이에 따라 공녀의 헌납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져서 원나라 세력이 물러가는 공민왕 초기까지 80년간 거의 매년 고려의 처녀들이 원나라 땅으로 끌려가야만 하였다.
1-1. 공녀[貢女]의 정의
원(元), 명(明), 청(淸) 나라의 요구에 따라 조선왕조가 조공품으로 바치던 여자
고려가 강동성(江東城)에 있는 거란족을 평정할 때 몽고의 지원을 받으면서 서로 관계를 갖게 된 이후. 몽고는 고려에게 계속 압력을 가하고 과다한 공물을 요구하여 왔다.
이러한 때 몽고의 사신
2. 공녀의 헌납 상황
1) 고려시대 원에 대한 공녀
- 고려가 대 몽 항전실패->몽골은 공물과 함께 공녀요구
- 고려사에 근거한 자료
- 충렬왕과 충숙왕때 공녀를 많이 보냄
2) 조선 전기 명에 대한 공녀
- 조선시대에 들어서면 공녀 관련 자료가 많음
일화로도 잘 나타나 있음
- 실제로 공녀를 보낸 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