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있다. 공자의 忠恕란 노예소유주인 귀족들 사이의 忠恕이지 노예소유주와 노예 사이의 忠恕는 결코 아니며 될 수도 없는 것이다. 이는 오로지 착취제도와 착 취자만 옹호하는 것일 뿐 "자기가 바라지 않는 것을 남에게 베풀지 말라"고 한 뜻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노예제를 지지한 공자로서는 그때
통하여 일관되게 전개·발달되었던 것이다.
2. 공자(孔子)의 생애
유교의 개조(開祖)이자 동양에서 으뜸으로 꼽히는 지성선사(至聖先師) 공자는 성이 공(孔)이고 이름은 구(丘), 자는 중니(仲尼)이다. 후세에서 그를 공자라고 통칭하나 자(子)라는 말은 당시에는 선생과 같은 남자에 대한 존칭이었다.
중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상가이자 교육자, 문헌정리자 였던 공자孔子(이름은 구丘, 자는 중니仲尼)는 기원전 551년 노나라 창평향 추읍에서 출생하였다. 그의 아버지인 공흘은 은나라 마지막 군주인 미자계의 후손이었기 때문에 귀족의 신분을 가지고 있었다. 노나라의 하급관리에 불과한 공흘이지
사상 역시 생겨나기 마련이다. 따라서 당시 중국사회에서 춘추시대가 유사이래 가장 혼란했던 사회라고 한다면 이 시대를 바로잡기 위한 위대한 사상가가 출현하는 것은 필연적인 사실이다. 이 필연적인 역사적 사실 앞에 출현한 사람이 바로 공자이다.
공자의 생애공자의 조상은 은(殷)나라의
BC 4세기까지, 성의 개념은 철학적 개념이 아니었다. 그 이전까지 성의 개념은 생명력, 삶의 과정, 성장, 탄생 등의 다양한 의미를 함축하는 생의 개념과 같은 의미로 상호 교환적으로 사용되었다. 이러한 용법에 따르면, 생과 성은 명사로서, 살아있는 존재의 생명력, 또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의 생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