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에서만 승인투쟁 혹은 절대적 공동체의 형성이 가능했는지에 대한 의문에 답하려는 연구가 등장한다. 구조적인 접근, 혹은 계급론적인 접근에서는 항쟁의 발발 혹은 항쟁의 원인에 대한 연구 속에 이미 참여의 문제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기층 민중이라는 이름 속에 내재해 있는 항쟁 주체로
광주민중항쟁의 성격과 의의
광주민중항쟁의 물적 기초는 해방이후 제국주의, 파시스트 권력과 결탁하며 대외의존적 자본 축적을 가속화시킨 종속적 독점 자본의 민중 수탈적 구조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광주민중들은 이러한 본질을 간파하지 못하였고 부르주아 민주주의와 독재를 대비시
광주에서의 학살과 그러한 군부 탄압에 항거하여 전개된 광주민중의 영웅적인 투쟁은 전두환 권위주의 정권이 그 나름의 정권 정통성을 확립하는 데 치명적인 타격을 가했다. 해외의 사례를 보면, 그러한 학살에도 불구하고 안정을 유지할 수 있는 권위주의 정권도 다소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여러
광주는 영산강의 지류인 극락강이 시의 북서부를 관류하여 서남으로 흐르며 동쪽에는 무등산, 북쪽에는 병풍산, 삼각산, 남쪽에는 금당산, 서쪽에는 어등산, 용전산이 둘러싸고 있다. 따라서 광주는 터진 일종의 분지를 이루고 있으며, 이 지역에서 대촌천, 오례천, 지석천 등 영산강의 지류들이 있어
Ⅰ. 서론
광주항쟁을 승리한 항쟁으로 규정하여 그 과정과 요인을 설명했지만, 한 가지 지적할 일은 이 승리가 완전한 승리라기보다는 ‘제한된 승리’라는 사실이다. 그 근거는 두 가지 차원에서 확인된다. 첫째는 적극적 미래지향적 전망에서 볼 때, 봉기시의 자치공동체에서 실현되었고 5월 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