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들이 있는 곳이라는 점에서 국제화 도시이기도 하다.
이와 같은 가리봉의 지역성을 하나로 통합하여 나타내기 위해 가리베가스라는 명칭을 만들었다. 즉, 중국과 동남아의 노동자들이 가리봉동에 모여 독특한 색채를 이루고 있는 가리봉동의 지역성을 살리고, 그 공간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영
디지털단지에는 대규모 아울렛 의류매장이 집적
공간적 입지가 양호하여 개발 압력이 큰 지역
구로공단의 이전으로 인근에 거주하던 노동자의 이주 > 지역의 슬럼화
빈 자리로 조선족이 이주
동북 3성에서 조선족의 대거 이주
가리봉동이 활기를 띄기 시작
가리봉동에 이미 형성되어 있던 건설 관
구로공단산업구조의 변화를 들 수 있다.
현재 구로디지털단지는 과거 구로공단으로 서울특별시 구로구 구로 3동과 가리봉 2동에 위치해 1960년대 정부의 수출산업육성방안의 일환으로 1963년~1973년까지 조성된 한국 최초의 국가계획공업단지이다. 하지만 구로공단은 2000년도에 들어서 구로디지털단
산업공단(구로공단)의 설립과 함께 수출산업의 요람으로 발전
세계최대규모의 기계공구상가 유통단지가 위치해 있어 수도권 경제의 중추적 역할
최근에는 국제 경제환경의 변화로 인해 제조업중심의 구로공단이 2000. 11월 서울디지털산업단지로 명칭이 개명되고 530개 벤처업체가 입주
.
1970년대 후반 이후 구로디지털단지의 주력품이 점차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1970년대 후반 가발산업이 쇠퇴기에 접어들면서 전기 전자업종이 섬유 봉제에 이어 공단 수출 2위를 차지하였다. 이어 1985년에는 전기 전자 분야가 공단 수출 1위 업종으로 부상하고, 섬유 봉제는 2위로 하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