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화는 김종직이 쓴 ‘조의제문’이 문제가 되어 일어난 사건이다.
로 상대 당파로부터 사상을 의심받거나 반역으로 몰려 피바람이 부는 일도 흔했기 때문이다. 김만중 역시 사대부 계급이었기에 불교사상을 논하는 것은 자칫 민감해질 수 있는 문제였다. 물론 구운몽은 불교적 색채가 짙게 배어나는
사대부의 체통을 지키는 것이 중요했으며 현재와 다른 유교적 가치관이 팽배했기에 사상적으로 손에 꼽을 만한 지점이다.
사대부의 자존심을 걸고 자신의 뜻을 똑똑하게 펴고자 했던 서포는 조선왕조실록에 313건 등장하고 있다. 실록에 기재되어 있는 내용이 전무하며 설화를 통해 캐릭터가 구축된
중심사상을 파악해야 한다는 의견은 보다 발전해갔다.
본고는 이러한 쟁점의 추이를 수용하여 불교와 유교, 그리고 불교와 유교를 함께 고려하는 입장을 중심으로 <구운몽>의 중심사상을 정리하고 타당성을 검토한 후, 해결 전망을 모색해보도록 하겠다. 이는 <구운몽>이 환몽소설임에 주목해서 액자
구운몽 연구」, 韓南大學校 敎育大學院, 2001, 8쪽
서포 김만중은 붕당 시대의 상황 속에서 방황하는 왕에게 면전에서 직언을 한 이유로 유배를 가게 된 것이고 그곳에서 창작한 것이 구운몽이다. 구운몽은 유불선이란 동양의 삼교 종교 사상을 소재로 하여 종교 간의 갈등이 아닌 융합의 미학을 구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