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인회는 바로 이러한 모더니즘 문학의 개화에 매개체 역할을 담당하였던 것이다.
구인회는 1933년 8월 15일 광교에 있는 양식집에서 정식으로 발촉되었다. 창립 목적은 순연한 입장에서 상호의 작품을 비판하여 다독다작을 독려하는데 있었다. 당시 창립 회원은 이종명, 김유영, 조용만, 이태준, 정지
구인회
<구인회>의 조직적 성격은 그 문학적 이념의 유무나 조직적 실체의 명료함으로 판명되는 것이 아니라, 당시의 언론매체의 장악을 통해서 회원 각자의 문학적 성장을 지속적으로 격려해 왔다는 사실에서 찾아야 한다. 실제로 <구인회> 결성과 <카프>의 해산 이후 ‘매체의 블록화’는 전체 문단
구인회 (九人會)
구인회는 계급주의 및 공리주의 문학을 배격하고 순수문학을 표방하며 1933년 결성되어 4년여 간 활동한 문학 동인회이다.
처음으로 구인회를 결성한 사람은 김기림 ․ 이효석 ․ 이종명 ․ 김유영 ․ 유치진 ․ 조용만 ․ 이태준 ․ 정지용 ․ 이무영 등 총 9
구인회의 결성을 할 때는 당시 거대한 단체인 카프의 해체라는 범 문단적인 사건이 일어날 무렵이다. 1925년부터 문단을 장악해오던 프로문학의 총 사령탑이었던 카프가 내, 외부적인 요인에 의해 1930년대 초반부터 그 붕괴의 조짐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먼저 1931년 제1차와 1934년 제2차의 카프핵심요
구인회(九人會)’의 핵심 동인인 이태준, 정지용, 김기림, 박태원 등과 교류가 시작되었고 정지용의 주선으로 잡지에 시를 발표하며 구인회에 동인으로 가담한다. 그 후 1936년은 이상이 다양한 작품을 발표하며 삶의 전환을 모색했던 시기이다. 그는 성천과 인천 등지를 방랑하고 다시 서울로 돌아와 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