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파 청산에 기준이 변화하는데 따른 것이라 본다. 이 장에서는 친일파의 개념과 일제의 친일파 육성정책에 대해서 알아보기로 하자.
2. 친일파란?한국사회에서 친일파란 단지 일본에 우호적이고, 일본문화를 찬양하는 자를 가리키는 말은 아니다. 그것은 주로 ‘파행적인 한국근현대사에서 그
일제시대의 김옥균 연구와 평가는 한철호의 「개화·일제강점기 김옥균에 대한 역사적 평가」(2004)의 pp.55~56를 참조하였다.
4. 북한학계에서의 김옥균 연구와 평가
사회주의 체제가 성립된 이후 북한의 근대사 연구는 모두 사적 유물론적 방법을 취하고 있다. 해방이후 북한학계에서 김옥균과
친일파는 민족적 양심이나 사회적, 정치적 양심이 몹시 결여된 집단이다. 그들은 구한말부터 일제말기까지 일제의 파시스트 침략정책에 영합하여 개인의 영달을 추구하고 국가의 독립과 민족의식 성장의 노력을 탄압해왔다. 해방후에는 미군정의 비호와 극단적 반공우익과의 결탁을 통해 민족분단을
시대’는 망국(亡國)에 대한 책임을 벗어날 수가 없었다.
1970년대 중반 한국 근대 변혁운동의 주체를 둘러싸고 이른바 ‘광무개혁 논쟁’이 벌어졌으나, 문제를 제기하는 차원에 머무르고 말았다. 1990년대 중반 들어 일제와 대한제국간에 맺었던 조약(條約)들의 불법성 문제가 제기 되면서 ‘고종시
한말·1910년대 일제의 식민통치
Ⅰ. 구한말 통감부의 식민지 사회 기초 형성
1. 통감부, 이사청의 설치
1) 1905. 12. 20. 칙령 제267호 <통감부 및 이사청 관제>
- 통감은 일본 왕에 직속, 한국 수비군 사령관에 대하여 병력 사용을 명령할 수 있으며, 통감부령을 발하고, 이사청의 위치 및 관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