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마도정벌은 한반도에서 왜구를 근절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으며 그 후 대일 외교체제의 형성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
이런 면에서 대마도정벌은 조선전기 한일관계를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부분이라 생각하고 왜구의 실체와 대마도정벌이 한일관계사에 끼친 영향 등 아직도 규명되지 않
국사'의 인신을 쓸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이러한 양국 관계는 명의 국내 사정이 몹시 불안한 것을 계기로 태종 즉위년 고명과 금인이 내려졌고, 태종 3년에는 명의 성조가 다시 금인과 고명을 내려줌으로써 일단 정치적으로는 여진 문제와 세공 등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나마 외교 문제가 정
Ⅰ.서론
일본과 우리나라는 많은 애증의 관계 속에서 살아왔다. 역사상 일본은 우리나라를 끊임없이 괴롭혀 왔는데 그 중에서도 고려 말과 조선 초의 왜구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한다. 구체적으로는 그 실태와 원인, 목적, 그리고 당시 조정의 대책 등을 알아보고 한일 관계를 이해하는데 조금이나마
국사기』「신라본기」이사부(異斯夫)조에는 울릉도가 우산국(于山國)으로 불리던 시절부터 사람이 살았다고 전한다. 또 이사부가 우산국을 정벌하기 위해 그곳에 사는 미련하고 사나운 사람들에게 나무로 사자 형상의 인형을 만들어 ꡒ너희가 만약 항복하지 않으면 이 맹수를 풀어놓아 너희를 밟
정벌할 의사를 표하고 조선 국서를 보냄
[일본왕이 왜구를 단속하지 않고 우리 강토를 침탈하고 명 태조의 영정을 벽에 걸어놓고 눈을 찌르는 만행을 일삼고 있으니 짐은 병선 1만 척을
징발하여 이들을 토벌하고자 한다. 너희 조선에서도 이를 미리 알아둠이
마땅할 것이다.] ☞ 태종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