년대모더니즘 소설의 성립에 크게 기여했다. 따라서 리얼리즘과 함께 한국문학사의 또 다른 한 축을 이루는 모더니즘에 대한 논의에 박태원은 언제나 문제적인 작가로 등장한다. 우리가 박태원 문학을 문제 삼을 때 간과할 수 없는 것은 모더니즘을 극복하고자 하는 문학적 노정에서 드러나는 다양한
등장인물 사이의 거리를 소멸함으로써 결과적으로는 1인칭 시점과 마찬가지의 효과를 발휘하여 서술자와 인물을 동일시하는 효과를 내고 있다. 이 장에서는 고전소설강독3공통) 세태소설론(임화)과 탈식민주의론을 통해서 고전 ?이춘풍전?과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씨의 一日?을 비교?서술하기로 하자.
시대상황의 변화로 인하여 1930년대의 문학은 20년대의 문학과는 다른 전개 양상을 보인다. 특히 소설의 경우 작가의 현실인식 태도나 이데올로기의 전개 양상, 문체나 기법 등이 다변화하는 경향을 보인다. 1930년대에 활발한 작품활동을 한 구보 박태원은 1930년 2월 동아일보에 「적멸」을 발표하고 같
년대부터 모더니즘 소설을 중심으로 활발한 창작 활동을 했던 소설가 박태원은 역사물, 아동물, 번역 등 다방면의 작업을 해방 이후까지 계속 했으며 월북 이후에도 1986년 작고할 때까지 삼국연의 (번역), 갑오농민전쟁 등 굵직한 대작들을 남기며 남과 북 양쪽에서 뚜렷한 족적을 남긴 유례없는 작가가
설도 있다. 오키나와는 원래 일본섬이 아니 다른 토착민이 살고 있었으나 일본에서 부속섬으로 만들었다. 궁미도에는 몇 천 호에 해당하는 조선인이 이 섬을 정벌하여 왕국을 건설하였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이 장에서는 경판본 고소설 ?홍길동전?과 박태원의 ?홍길동전?을 비교, 분석해 보기로 하자.